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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스캔들, 위스키 토대 마련하다 [명욱의 술 인문학]

입력 : 2024-08-24 19:00:00 수정 : 2024-08-24 10: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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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라보면 역사를 바꾼 스캔들이 자주 등장한다. 로마의 전성기를 이끈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당나라의 흥망성쇠를 이끈 현종과 양귀비, 그리고 우리나라의 연산군과 장녹수 등으로, 모두 역사에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겼다. 중세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연 스캔들도 있다. 영국의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스캔들이다. 이 둘은 위스키 발전의 토대도 됐다.

헨리 8세는 여성 편력이 심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의 제우스처럼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 총 6번의 결혼을 했고, 2명의 왕비는 처형을 당했다. 이렇게 대단한 스캔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정을 받는 이유는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해 성공회라는 영국만의 국교회를 성립시켰고,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가는 절대 왕정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스캔들로 일어난 종교개혁은 증류 기술을 알고 있던 로마 가톨릭교 수도사들이 민간으로 들어가 증류 기술을 전파하게 했고, 그 결과 영국의 위스키 발전에 영향을 줬다. 사진은 스코틀랜드의 멜로즈 수도원.

그의 첫 왕비는 바로 스페인 아라곤 왕국의 카탈리나 공주. 가톨릭 수호자 집안의 딸이었다. 헨리 8세도 로마 교황에게 적극 협조적이었으며, 유럽 본토에서 불어오는 종교개혁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교황인 레오 10세로부터 신앙의 수호자(Fidei Defensor)라는 칭호까지 받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가 사랑한 여자였다. 카탈리나는 초혼이 아니었다. 형인 아서 튜더의 아내였다. 하지만 아서 튜더가 결혼한 지 20주 만에 병에 걸려 죽자 형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문제는 이 둘 사이에서 아들이 없었다는 것. 요절하거나 사산이 됐고, 후에 피의 메리라고 불리는 메리 공주만 살아남게 된다. 자녀가 공주밖에 없을 때 당시 풍속으로 공주가 외국 왕자와 결혼을 하면 왕위 계승권이 외국 왕자에게 넘어가거나 잘못하면 내란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이런 상황에서 헨리 8세는 사랑에 빠졌다. 바로 카탈리나의 시녀였던 앤 불린이었다. 헨리 8세는 그녀에게 정부(情婦·정을 두고 깊이 사귀는 여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녀는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그가 생각한 것은 적법한 이혼. 그리고 아들을 낳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헨리 8세의 요구에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는 혼인무효 요청을 불허했다. 당연히 카탈리나도 이혼은 절대 할 수 없다며 버텼다. 결국 7년에 걸친 법정 공방과 로비 끝에 헨리 8세는 로마 교황과 결별을 선언하고 1534년 수장령을 선포한다. 수장령은 간단했다. 잉글랜드의 왕과 법률 기관이 성직자에 대한 형사 및 재판 권한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뜻은 더 이상 잉글랜드 교회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 그러면서 수도원을 통폐합한다.


결국 수도원에서 쫓겨난 수도사들은 민간에 스며들어 증류 기술을 세상에 알리거나, 가톨릭이 국교인 나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가톨릭을 국교로 삼고 있는 가까운 나라는 바로 이웃인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발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707년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통합을 이루지만 영국의 성공회에 반발이 있었던 가톨릭교도들은 이후 험준한 하이랜드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몰래 위스키를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위스키는 합법화를 거쳐 영국을 대표하는 술이 됐다. 이렇게 보면 헨리 8세나 위스키를 만든 스코틀랜드 사람이나 모두 세상에 순응적이지 않았던 듯하다. 결국 역사는 따라가는 인물보다 따르게 하는 인물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넷플릭스 백스피릿의 통합자문역할도 맡았으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에는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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