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정국의 풍경- 인물로 돌아보는 대한민국 현대사/신복룡/중앙북스/2만6000원
“좌익 내부의 갈등과 우익 내부의 갈등이 좌우익 사이의 갈등보다 더 심각했고 더 적의(敵意)에 차 있었으며 잔혹했는데, … 해방정국의 희생자 가운데 대부분은 이념이 다른 적대 세력의 손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우익은 우익의 손에 죽었고 좌익은 좌익의 손에 죽었다. … 같은 이데올로기 집단 안에서도 중도 온건 노선을 배신이나 변절 또는 기회주의자로 보려는 극단적 도그마와 성숙하지 않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 난마와 같은 해방정국에서 ‘신탁 통치의 문제를 가슴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냉정과 이성으로 지혜롭게 고민하자’고 주장하던 송진우나 장덕수, 여운형은 좌우의 십자포화로 말미암아 희생되었다.”(80~81쪽)
해방정국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념 대립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다. ‘해방을 시켜주지만, 독립을 시키지 않는다’는 미국의 확고한 정책하에서 한국은 미국의 준식민지였다. 그러다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으나 곧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3개월 정도 ‘공화국 군대’가 지배했고, 다시 주권을 찾았으나, 그 모든 과정에서 일제, 미군정, 대한민국, 인민공화국(북한), 미8군 사령관(유엔군 사령관)을 거쳐 대한민국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었다. 통치권자가 여섯 번은 바뀐 셈인데, 저자는 이렇게 팔자가 드센 세대가 일찍이 없었다고 분석한다.
“이승만이 상해에서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임정이 그에게 기대했던 것은 독립운동 자금이었다. 이승만도 그 문제에 관해서는 책임질 수 있다는 언질을 주었다. 하와이와 미 동부 교포들의 헌금이 있었으나 ‘푼돈’ 정도에 그쳤고, … 그가 임정을 도와준 것은 공식적으로 200달러가 전부였다. 구매력을 기준으로 볼 때 그때의 1달러는 지금의 한화 2만원 정도이다.”(141쪽)
한국 현대사를 ‘인물’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나가는 책이다. 영화 ‘건국전쟁’ 속 “이승만이 민주주의자였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다”라는 대사에 대해 저자는 “역사의 평가가 그렇게 바뀐다면, 수유리에 묻힌 150명의 영혼은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공덕이 과오를 덮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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