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의정 갈등 사태’ 해소를 위해 정부에 2026학년도 의대 증원 보류를 제안했으나 대통령실이 거부해 파장이 일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 25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계기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기존 3113명(2024학년도)에서 1497명 더 확대하기로 한 정부 결정은 유지하되, 2026년 모집 정원은 증원을 보류하자’는 제안을 정부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2024년도 정원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의대 증원과 관련한 정부 방침은 변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당정의 입장이 엇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여당의 제안은 전공의 이탈 사태가 6개월을 넘기면서 의료진 탈진과 응급실 파행 등 의료공백 문제가 심각해진 현실을 고려한 고육책일 것이다. 한 대표는 어제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의 본질과 동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지금 상황에 대한 국민 걱정과 우려를 경감시킬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의대 모집 정원은 1년10개월 전에 정해야 해 2026학년도도 이미 결정이 돼 있다. 증원을 보류하면 결정을 뒤집는 것이고, 이로 인해 의대 증원 동력을 상실할 우려가 크다. 실효성 있는 중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보류가 아니라 정원 숫자는 줄이더라도 증원 기조는 이어가는 것이 개혁의 취지에 맞지 않겠나.
문제는 당장 상황이 어렵다고 원칙 없이 물러서면 더 큰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 재검토”만을 주장하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한 대표의 제안에 의료계도 양보안을 내 화답할지 미지수다. 한 대표가 전공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공개로 만나는 등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복귀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외려 의료계가 당정이 불협화음을 내는 틈을 파고들어 정부의 ‘백기항복’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의료개혁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주는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당장 입시를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어려울수록 중심을 잡고 정도를 걸어야 한다. ‘의사 불패’의 고리를 끊으려면 당정이 보다 신중하고 정교한 접근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의료공백 장기화는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의사들의 책임이 크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 적정 인원에 대해 ‘과학적인 단일안’을 내 이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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