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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예술로 여기고 만들 수도 있어”…딥페이크 ‘솜방망이법’ 만들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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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28 11:24:43 수정 : 2024-08-28 22: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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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3일 법사위 소위서 논의
의원∙당국자들 안일한 인식 노출
당시에도 매년 수천 건 피해 호소 이어져

‘딥페이크’ 성범죄가 ‘성폭력범죄처벌 특례법’(성폭력처벌법)에 의해 처벌되기 시작한 건 2020년 6월25일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가해자에게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죄와 음란물 유포죄 정도만 적용할 수 있었다.

 

2020년 사회를 경악케 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서도 성폭력처벌법을 적용하도록 입법 보완이 이뤄졌지만, 가해자들이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는 ‘솜방이법’에 그쳤다.

 

진보당 관계자들이 지난 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대응과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당시에도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해 ‘가짜 연예인 음란 동영상’, ‘지인 능욕’이 사회 문제로 부각됐지만, 국회 입법 과정에서 의원과 당국자들이 보여준 인식 수준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딥페이크 관련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2020년 3월3일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 회의에서 이뤄졌고, 다음 날인 4일 법사위 전체회의, 5일 본회의에서 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에는 ‘반포(유포) 등을 할 목적으로 허위 영상물을 편집·합성∙가공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등의 처벌 규정이 담겼다.

 

◆‘솜방망이법’ 만들어진 과정은 

 

해당법에 따라 가해자를 처벌하려면 ‘유포 등을 할 목적’이 있었음을 밝혀내야 한다. 또 불법 영상물을 제작한 사람만 처벌 가능하고, 이를 시청∙소지한 자는 처벌하지 않는다.

 

그 결과 매년 수천 건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법 개정 이후 지난 5년간 판결을 받은 사례는 71건에 그쳤고 그마저도 35건은 집행유예가 내려졌다.

 

28일 세계일보가 국회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국회에서 딥페이크 관련 성폭력처벌법 논의가 이뤄진 건 2020년 3월3일이 사실상 유일했다.

 

이인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왼쪽 두번째) 위원장과 여가위 간사인 국민의힘 서범수∙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이 지난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다음은 당시 회의의 주요 장면들이다.

 

“딥페이크의 경우 반포 등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보시는 건가요?”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기헌 소위원장)

 

“예, 목적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오수 법무부 차관)

 

“법원 의견은 어떠신가요?” (송기헌 소위원장)

 

“같은 의견입니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

 

“(현행법으로 처벌 안 되냐는 질문에) 그 자체로 음란성을 띠면 (정보통신망법으로 처벌 가능한) 음란 영상이 되겠습니다만, 이게 특정인, 유명한 사람을 합성한 것을 얘기하는 것이거든요.”(김인겸 차장)

 

“희박하지만 누군가 피해자가 있는 것이지요, 새로운 처벌 유형을 만들자는 데 다 동의하셨기 때문에…”(송기헌 소위원장)

 

“이제 그럴 때(성폭력법으로 처벌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유명인, 유명 정치하시는 분들이나 의외로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거든요.” (김오수 차관)

 

“그런데 이게 꼭 유명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피해를 많이 보기 때문에 더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민생당 채이배 의원)

 

“지금 점점 더 많이 퍼지는 범죄인 것 같기는 해요.” (민주당 백혜련 의원)

 

“반포할 목적이 아니어도 이런 딥페이크를 통해 인격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것을 꼭 반포 목적으로만 제한하는 건 너무 협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채이배 의원)

 

“자기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거든요.” (김인겸 차장)

 

“청소년들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하거든요. 유명인들 갖다 놓고 자기 혼자 작업할 수가 있는데 그것을 처벌하는 건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얘기예요.” (김오수 차관)

 

“그런데 배포할 목적이 아니어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자신의 인격권을 침해받은 것 아니에요?”(채이배 의원)

 

“반포할 목적 없이 했을 경우는 아무도 발각할 수가 없는 거예요. 상상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라 반포할 목적이 있어야 성폭력범죄로서 특징성이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거든요.” (송기헌 소위원장)

 

당시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현재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내고 있다.

 

딥페이크 관련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연합뉴스

◆“매년 수천 건 딥페이크 삭제 요청 들어와”

 

4년 전 상황이라 당시 딥페이크 성범죄 수준이 지금만큼 심각하지 않았다고 일각에서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3년 전인 2017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음란·성매매 정보 중점 모니터링’을 한 뒤 접속차단 조치를 내린 사례 494건 중 지인 능욕·합성이 29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일부 피해자들은 이름을 바꾸고 직장을 그만두는 등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였다.

 

정영애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2021년 2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2020년 1월부터 11월까지 상담 지원한 사례가 1000건이고 삭제 지원은 4000건 이상이다. 수사 의뢰와 법률∙의료 지원도 20여건”이라며 “저희가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로 신종 범죄가 확산되고 있어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20년 3월31일 성명을 내고 “개정안은 특정 인물의 얼굴·신체를 합성해 편집하는 딥페이크를 제작·반포하는 행위만을 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데 그쳤다”며 “성 착취영상물 제작자, 유포자, 소지자들에 대한 신상공개, 보호관찰, 교육의무 부과, 전자장치부착 규정도 만들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7일 페이스북에서 “2020년 진정한 ‘N번방 방지법’을 만들었다면 2024년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라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제가 추적활동을 하던 4년 전에도 매일 같이 일어났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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