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뛰어넘는 AI비서 기대
2년여 지난 지금 현실은 달라
AI혁명도 인간의 영역임을 확인
영화 아이언맨(2008)에는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JARVIS)가 등장한다. 자비스는 주인공을 위해 작전에 필요한 것을 먼저 준비하기도 하고, 전투 중 조언을 하기도 한다. 평범한 대화부터 주인공을 비꼬기까지 하는 등 일상 대화도 가능하다. 아마도 2022년 말 챗지피티(ChatGPT)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 눈에는 영화 아이언맨이 현실처럼 아른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ChatGPT 1년 반 뒤 출시된 스마트폰 인공지능은 자비스가 아니었다. 기존 스마트폰보다는 훨씬 뛰어난 기술들이 탑재된 것은 사실이다. 기술 발전 덕분에 스마트폰은 실시간 번역, 통화 요약, 기사 요약, 질문과 답변 등 기존보다 더욱 다양한 작업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자비스는 아니었다. 우리는 내가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하면, 친구의 위치를 파악한 뒤 항공편까지 준비해두는 수준의 자비스를 기대했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잘못 이해한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SF적인 상상력을 잠시 접어두고,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의 인공지능을 있게 한 기반 기술은 1980년대에 발견되었다. 이 이론은 인공지능의 이론상 성능을 매우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지만, 학습에 매우 많은 데이터를 요구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인공지능들은 전부 대량의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ChatGPT의 전신인 GPT 3.0은 인간이 평생 볼 수 없을 분량인 백과사전 6만3000권 분량(570GB)의 데이터를 사용해 학습되었다. 더 큰 문제는 족집게 과외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과사전 수만 권 분량의 학습 데이터에 세계일보 내용 몇 줄을 끼워 넣는다고 해서, 해당하는 세계일보 내용을 인공지능이 답한다는 보장이 없다. 학습에 필요한 자원도 상당하다. 지금의 인공지능들은 학습에 수만개의 반도체(GPU)가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상황이 자명하다. 우리 개개인이 평생 만드는 데이터는 인공지능을 개인화된 비서로 학습시키기엔 너무 적고, 반도체 능력이 부족한 스마트폰 수준의 기기에서는 학습시킬 수도 없다. 자비스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의 인공지능은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수천 단어 정도 되는 단기기억을 이용한다. 인공지능 자체를 실시간으로 사용자 맞춤형으로 학습시킬 수 없으니, 사용자가 특정 작업을 요청하면 최근 몇 시간~며칠 정도 되는 사용 기록을 인공지능에게 함께 제공하여 사용자의 의도를 최대한 추론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에게 ‘조금 전 일정 취소해줘’라고 요청하면, 최근 10분 동안 사용자의 스마트폰 사용 기록을 인공지능에게 함께 제공한다면, 이를 통해 조금 전 일정을 유추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와의 깊은 유대가 쌓이지는 못한다. 단기기억을 넘어서면 과거를 망각해버리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자비스보다는 영화 메멘토(2000)의 주인공 레너드에 가깝다. 영화의 주인공 레너드는 10분마다 기억을 잃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이다. 그의 장기기억은 수년 전 과거 특정 순간에 얼어붙어 있고, 10분간의 상황을 몸에 메모로 남김으로써 현실을 살아간다. 그는 촉이 날카롭고 운동 능력도 뛰어난 사람이지만, 10분 단기기억의 한계로 인해 많은 실수를 하고 상상치 못한 인물들에게 이용당하는 삶을 살아간다. 지금의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인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척척 해내기도 하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에 속아 오답을 내기도 하지 않던가.
인공지능은 총력전이다. 인공지능은 올바른 응용처에 적용되어야만 그 힘을 발휘한다. 레너드에게 자비스처럼 일하라고 하면 그 뒤에는 실패뿐이며, 이는 결국 인공지능 경쟁력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비유는 어려운 대상을 쉽게 이해하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이지만, 과도할 경우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방해한다. 가끔은 SF영화의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마주한 기술이 정말로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어쩌면 그 뒤에 진정한 인공지능 혁신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정인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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