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14년간 양육비를 주지 않은 여성이 사망한 자녀의 보험금을 수령하자 법원이 과거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9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의정부지방법원 제1가사부는 자녀들을 양육한 친부가 친모를 상대로 제기한 양육비청구 소송 항고심에서 “친모는 친부에게 과거양육비로 1억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들은 혼인신고를 마친 후 자녀 둘을 낳고 살다가 협의이혼을 했다. 협의이혼 시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자를 친부로 지정하기로 합의했다. 친부는 이혼 후 다양한 소득활동을 하며 양육했으나 친모는 자녀들과 별다른 교류가 없고 경제적인 지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21년 자녀가 배달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친부는 가해자 측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기 전에 친모에게 연락해 친모의 법정상속분 중 일부만 지급받는 내용으로 합의를 요청했다.
하지만 친모는 법정상속인으로서 수령할 수 있는 보험금 전액을 수령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실제로 친모는 보험금으로 8670만원을 수령했다.
친부는 자녀들의 과거양육비를 청구하기 위해 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친부를 대리해 친모를 상대로 자녀들의 과거양육비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친모는 “협의이혼 당시 친부의 부모님이 자녀들을 양육하는 대신 양육비를 친부가 부담하기로 했다”며 “친부도 이 사건을 청구하기 전까지 양육비를 한 번도 요구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청구는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1심 재판부는 “친모가 자녀들과 별다른 교류도 경제적인 지원도 없이 지내다가 자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법정상속인의 지위에서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을 수령한 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녀들을 양육할 수 없었다는 사정을 인정할 자료가 부족한 점에 비춰 볼 때 과거양육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신의칙상 감액의 필요성을 이유로 과거양육비를 6500만원으로 결정해 친부의 청구 일부를 인용했다.
그러자 공단은 항고를 제기했다. 친모가 이미 고액의 보험금을 수령한 데다 항고심 중 자녀의 교통사고 가해자 측 보험회사에서 약관상 유상운송 면책을 주장하면서 지급을 보류한 보험금의 추가 지급을 결정해 감액의 필요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항고심 재판부는 “친모가 사망한 자녀의 법정상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험회사로부터 거액의 보험금을 지급받거나 지급받을 예정인 점, 친모가 꾸준히 소득활동을 하는 점에 비춰 과거양육비를 1억원으로 정함이 타당하다”고 결정했다.
친부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공단 소속 김수연 변호사는 “장기간 양육비를 청구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양육비 청구를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특히 이 사건은 항고심에서 추가로 지급받을 보험금까지 고려해 1심보다 과거양육비를 증액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는 외면한 채 상속인의 권리만 내세우며 사망보험금을 수령하려는 얌체 부모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사례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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