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도 머물 곳도 마땅찮은 이 내 인생 어쩌다가 이리 됐나 팔자가 사나워서 외기러기 되았는가”라고 신세 한탄을 하며 각각 남과 북으로 향하던 옹녀와 변강쇠가 좁은 길에서 마주친다.
-옹녀: 앞전을 터주시오. 어서요.
-변강쇠: 그란디 길이 좁아 놔서 영∼ 내가 힘을 주어설랑 쏙 넣어볼 테니 바쁘게 지내가 보시오.
-옹녀: 무엇을 쏙 넣어본단 말씀이시요?
-변강쇠: 허. 거. 아랫배를 그래본다 그 말이지. 초면에 거시기를 그러겄소?
-옹녀: 아. 그럽시다요.
-변강쇠: 어찌 지나가지 않으시오?
-옹녀: 무엇이 다리 사이에 걸렸소.
-변강쇠: 거. 참 고이헌 형편일세. 내 양수양족은 내 마음대로 허드락도 안 되는 것이 꼭 한나가 있습니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한 장면이다. 관객들은 옹녀와 변강쇠 사이에 벌어지는 야릇한(?) 상상을 하며 박장대소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국립창극단이 유실된 판소리 일곱 바탕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외설로 치부되던 ‘변강쇠 타령’ 이야기를 연출가 고선웅이 각색하고 연출한 작품이다. 창극 최초로 ‘18금(성인용) 창극’을 표방하지만 야하기보다 해학적이다. 고전을 기발하게 비트는 데 탁월한 고선웅의 톡톡 튀는 말맛과 연출, 능청스럽고 절묘한 배우들의 연기가 어우러진 덕분이다.
특히 ‘강한 남성의 대명사’ 변강쇠에게 맞춰져 있던 기존 시선에 ‘점’을 찍고 판소리 원전의 결말도 완전히 뒤엎으며 옹녀를 진취적인 여성으로 그린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판소리 속 옹녀는 남편 변강쇠가 어리석은 행동으로 죽음을 자초한 후 수동적이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반면 창극 속 옹녀는 지독한 운명의 굴레와 역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공연은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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