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신청’ 전락 유보통합 시범학교, 누굴 위한 정책인가” 문창유치원 교사들 “지정 취소” 반발

“교육 주체인 교사들의 의견은 묻지도 받지도 않았습니다. 교사를 배제한 채 ‘깜깜이 신청’된 유보통합 시범학교 지정은 취소돼야 합니다.”

대전지역 유보통합(영유아학교) 시범학교로 선정된 문창유치원 교사 5명은 지난 19일 세계일보와 만나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교사들도 모르는 교육정책이 어떤 교육적 효과를 낳겠느냐”라며 “졸속 추진된 정책은 결국 교육은 없고 보육만 남게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문창유치원 교사들과 전교조 대전지부가 지난 12일 오후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밀실신청 유보통합 시범학교 선정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전교조대전지부 제공

23일 대전시교육청에 따르면 대전지역 유보통합(영유아학교) 모델학교로 유치원 2곳과 어린이집 4곳 등 6곳이 선정됐다. 공립은 문창유치원이 유일하다. 나머지 5곳은 모두 사립유치원·어린이집이다. 

유보통합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나뉘어져있는 유아교육과 보육의 관리체계를 일원화하는 정책이다. 핵심은 부모의 돌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유치원과 어린이집 기본 운영시간을 8시간으로 늘리고 4시간의 추가 돌봄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실상 1일 12시간, 주 6일 기관 돌봄이 추진되는 것이다. 인건비 등 관련 사업비로 3000만∼1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150여곳을 시범학교로 선정했다. 

지난 6월 이같은 내용의 정부조직법이 개정됐으며 이달부터 시범학교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업무가중’, ’‘밀실신청’, ‘재원 문제’ 등 논란이 잇따르면서 전국적으로 교사들의 반발이 일고 있다. 

문창유치원 교사들이 강력 반발하는 부분은 ‘교사들의 의견’이 전혀 수렴되지 않은 ‘막무가내식 신청’이었다는 점이다. 

8년차 교사는 “교육현장은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협력해 만들어가는 공간인데 최소한의 협력조차 무시당했다”며 “문창유치원은 모든 교사들의 협의 없이 밀실에서 진행된 계획서 제출로 시범사업에 선정되게 됐다. 이게 어떻게 민주적인 절차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또다른 교사는 “상황을 알고 나서 즉각적으로 원장과 면담을 요청했으나 의자가 강한 원장은 유치원 예산 확보와 후배 교사를 위한 것이라며 되려 설득에 나섰다”며 “심지어 전교조와 함께 문제제기 후 대전시교육청에 교사들의 의견을 전하겠다고 한 다음날인 8월 29일 선정됐다는 공문이 내려왔다”고 황당해했다. 

문창유치원 교사들과 전교조 대전지부가 지난 12일 오후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밀실신청 유보통합 시범학교 선정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전교조대전지부 제공

교사들의 반발이 커지자 교육부는 기간제 교사를 한시적으로 고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문창유치원 교사들은 시범학교 지정 취소를 촉구했다.

7년차 한 교사는 “시범사업 반대 이유는 단순히 업무 부담이 아니다”라며 “교사들의 전문성과 역할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이뤄진 신청은 전교조 단체협약을 무시한 명백한 절차적 위반이며 협의과정 및 투명성 부재라는 교육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초 서울 공립유치원에서도 교사의 동의없는 ‘밀실신청’ 문제가 드러나자 공립유치원 2곳이 사업 신청을 취소했다. 

교사들이 집회를 여는 등 문제가 확산되자 대전시교육청은 이날 문창유치원 교사들과 긴급 간담회를 열어 유보통합 사업지정 및 신청 권한이 있는 교육부와 간담회를 추진키로 했다. 

김민숙 대전시의원은 “유보통합 정책의 목적은 더 나은 교육과 보육에 있는데 추진 과정에서부터 소통이 안된다는 것은 목표로 가면된다는 것”이라며 “교원들의 의지가 중요한 정책인데도 비민주적인 절차로 추진되는 건 알맹이없는 껍질에 불과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윤정병 대전시교육청 유초등교육과장은 “문창유치원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 기간제 교사 채용은 일시 중단키로 했다”며 “유보통합 시범사업 지정 및 취소 권한이 있는 교육부와 삼자 면담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전=강은선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