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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 환우들에 희망 전한 ‘거구의 천사’ [고인을 기리며]

입력 : 2024-09-26 06:00:00 수정 : 2024-09-25 21: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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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일 승일희망재단대표

200㎝ 큰 키로 농구선수 활약해
코치 생활 중 병 얻어 23년 투병
병 알리고 모금해 요양병원 추진
호흡기 달고도 책 출간 등 귀감돼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은 사람의 몸을 서서히 굳게 만든다.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기 때문에 인간 몸의 모든 근육을 마비시킨다. 손과 발은 물론 안면, 안구 또 호흡에 필요한 근육까지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슈퍼스타 루 게릭이 1939년 이 병으로 은퇴한 뒤 죽음에 이르면서 ‘루게릭병’으로 불린다.

프로농구 코치로 일하다가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이어왔던 박승일 승일희망재단 공동대표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박승일 승일희망재단 공동대표가 2015년 1월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올스타전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25일 별세한 고인은 투병 중에도 루게릭병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다. 뉴시스

승일희망재단은 이날 “박승일 공동대표가 향년 53세로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소천했다”고 밝혔다. 신장 200㎝ 거구인 고인은 연세대와 실업 기아자동차에서 농구 선수로 활동했고, 2002년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에서 코치로 일하다가 루게릭병 판정을 받고 23년간 투병해왔다.

병을 진단받은 당시 고인은 “나에게 남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며 “루게릭병 환우를 위해 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이후 고인은 각종 방송에 모습을 비치며 루게릭병이라는 희소 질환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애썼다. 고인은 2002∼2003시즌 현대모비스가 승리할 때마다 10만원씩 루게릭병 환우들을 위해 기부하는 정책을 도입했고, 또 루게릭병 환자 돕기 운동을 펼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를 개설하며 세상을 향해 도움을 요청했다.

발병 20개월 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몸이 굳어버린 고인은 2004년 7월, 호흡근까지 마비됐다. 기도를 절개해 목소리를 잃은 고인은 이후 호흡기를 달고 살아갔다. 고인은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도 2009년 눈으로 움직이는 마우스를 활용해 책 ‘눈으로 희망을 쓰다’를 펴냈다.

또 2011년에는 가수 션과 함께 비영리재단 승일희망재단을 설립, 아이스버킷 챌린지 캠페인 등을 통해 각종 모금 활동을 진행했다. 고인의 노력의 산물인 루게릭 요양병원은 지난해 12월 경기도 용인에서 첫 삽을 떴다. 이곳은 병상 76개와 재활치료 시설 등을 갖췄다. 고인은 지난해 12월 착공식에 구급차를 타고 참석하기도 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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