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허사비스·점퍼 3人 영예
물리학상 ‘AI대부’ 선정 이어 또
베이커, 새로운 단백질 설계 성공
바이오 산업 발전 기여도 높아
‘알파고 아버지’ 허사비스·점퍼
단백질 구조 예측 ‘알파폴드’ 개발
노벨위, AI 발전 성과 인정 주목
베이커 “인공지능 지닌 힘 실감”
딥마인드 공동수상자에 공 돌려
인공지능(AI)이 인류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이 과학계에 가득한 가운데 AI의 선구자들이 또다시 노벨상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구글의 AI 기업 딥마인드의 핵심 인사들이 202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올해 화학상 수상자로 미국 생화학자 데이비드 베이커 워싱턴대 교수와 구글 딥마인드의 존 점퍼 선임연구원,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를 공동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위원회는 “베이커 교수는 AI를 활용해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을, 점퍼 연구원과 허사비스 CEO는 단백질의 복잡한 구조를 예측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AI 모델 ‘알파폴드’를 개발한 공로로 상을 수여한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이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우리만의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은 인류에게 가장 큰 혜택을 제공한다”며 이들의 업적을 평가했다.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10일 스웨덴 스톡홀름(생리의학·물리·화학·문학·경제상)과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상)에서 열린다. 상금은 1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4억3000만원)로 절반은 베이커, 나머지 절반은 점퍼와 허사비스가 나눠 갖는다.
전날 ‘AI의 대부’ 제프리 힌턴 교수가 예상을 뒤엎고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뒤 이들은 화학상의 유력한 수상자로 지목됐다. 보수적인 수상자 선정으로 유명한 노벨위원회가 AI를 ‘과학의 미래’로 받아들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들은 논문 인용 횟수 데이터를 기반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데이터 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로부터 유력한 수상후보로 지목되기도 했다. 2021년 발표된 알파폴드 관련 논문은 이미 1만6000회 이상 인용됐다.
세 사람의 공동 수상자 중 베이커는 인체를 이루는 단백질의 구조를 연구해온 과학자다. 20여가지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은 생명체를 이루는 일종의 ‘블록’ 같은 역할을 하는데 베이커 교수는 2003년 이 아미노산들을 이용해 기존에 존재했던 단백질과는 전혀 다른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베이커 교수 연구팀은 의약품, 백신, 나노 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새로운 단백질들을 꾸준히 만들어냈다.
특히, 그는 단백질 구조 예측과 설계 분야에서 AI 기술을 활용해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거둬왔다.
점퍼는 구글 딥마인드에서 ‘알파폴드 프로젝트’를 이끌며 이런 단백질 구조 연구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알파폴드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데 획기적인 정확도를 자랑하는 AI 기반 프로그램이다.
단백질은 구조가 기능을 결정해 구조를 알아내면 체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단백질 구조 연구를 통해 질병의 원인을 찾고 치료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알파폴드가 나오기 전까지는 단백질 종류 2억여 개 가운데 구조가 확인된 것은 20만개가 채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등장한 ‘알파폴드 2’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돌파구를 열었다. 알파폴드는 과학자들이 기존에 밝혀낸 단백질 구조 관련 데이터를 학습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해냈다.
이후 전세계 190개국에서 200만명이 넘는 연구자들이 알파폴드2를 사용했으며, 이를 통해 사실상 모든 단백질 구조를 예측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노벨위원회는 설명했다.
화학자가 아니라 경영자인 허사비스가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큰 이변으로 받아들여진다. AI 기술 발전이 이번 성과를 만들어냈음을 노벨위원회가 인정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루 전 물리학상 수상과 함께 AI는 이제 과학의 혁신을 이끄는 연구 도구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허사비스는 2016년 바둑기사 이세돌과 격돌해 전 세계에서 주목받은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 창업자로 ‘알파고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인물이다.
구글은 AI 발전의 초석을 다진 딥마인드를 2014년 5억달러에 인수한 뒤 허사비스가 AI 연구개발을 이끌게 했다. 허사비스의 리더십 아래 딥마인드는 단순한 AI 개발을 넘어서 의료와 물리, 화학 등 과학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AI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조직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베이커 교수도 단백질 구조 관련 연구에서 딥마인드의 기여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수상 후 전화 연결에서 “점퍼와 허사비스가 단백질 구조 예측에 대해 뚫어낸 돌파구는 정말로 AI가 가질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보여줬다”면서 “이는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AI 방법론을 단백질 설계에 접목하도록 해줬으며, 힘과 정확성을 크게 키워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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