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마라톤에서 2시간10분의 벽이 드디어 깨졌다. 그간 한계로 여겨졌던 벽이 무너지면서 어디까지 기록 향상이 가능할지 관심을 끈다.
케냐의 루스 체픈게티(30)는 14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2024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9분56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체픈게티의 기록은 지난해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 티지스트 아세파(26·에티오피아)가 세웠던 종전 세계기록 2시간11분53초를 무려 2분 가까이 앞당긴 것이다.
이날 체픈게티의 기록은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여자 마라톤의 ‘2시간10분’ 벽을 처음으로 돌파한 것이다. 2019년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마라톤 챔피언인 체픈게티는 그간 시카고 마라톤에서 유독 강세를 보인 선수다. 2021년에 이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 체픈게티는 2022년에 대회 2연패를 달성한 뒤 올해 또 한 번 월계관을 썼다.
여자부 2위에 오른 수투메 아세파 케베베(에티오피아)의 기록은 2시간17분32초. 체픈게티가 얼마나 월등한 실력으로 같은 여성 선수들을 압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체픈게티의 기록은 남성들과 비교해도 수준급의 성적이다. 이날 같은 코스를 달린 남자 선수 중 체픈게티보다 빠르게 결승선을 끊은 선수는 9명에 불과하다. 체픈게티는 남자부 중상위권 선수를 ‘페이스 메이커’로 삼고, 2시간10분의 벽을 돌파했다.
체픈게티의 종전 개인 최고 기록은 2시간14분18초로, 이번 대회에서 무려 4분22초를 단축시킨 것이다. 경기 뒤 체픈게티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며 “세계기록 경신은 내 꿈이었다. 이를 위해 싸웠다”라고 말했다.
2001년 다카하시 나오코(일본)가 2001년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19분46초로 여자 마라톤에서 2시간20분의 벽을 깬 이후 10분을 더 줄이는 데 무려 23년이나 걸렸다.
세계 남녀 마라톤은 점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대기록들을 쏟아내고 있다. 남자 세계 신기록은 지난해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00분35초로 달린 켈빈 키프텀(케냐)이 보유하고 있다. 키프텀은 올해 2월 케냐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엘리우드 킵초게는 지난 201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이노스 1:59 챌린지’에서 1시간59분40초로 2시간의 벽을 깨기도 했다. 공식 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세계 신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공인 세계 신기록이다.
반면 한국 마라톤은 계속 정체되어 있다. 한국 남자 마라톤 최고 기록은 이봉주가 2000년 2월 도쿄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가 24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한국 여자 마라톤 역시 세계 정상급과는 큰 격차가 있다. 김도연이 2018년 3월 서울 국제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25분41초가 최고 기록이다. 2시간10분대는커녕 2시간20분대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게 한국 마라톤의 초라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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