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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얼된 백세주, 약주 시장 부활 이끌까 [명욱의 술 인문학]

입력 : 2024-10-19 15:00:00 수정 : 2024-10-20 16: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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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개천절에는 흥미로운 행사가 하나 열렸다. 한국의 대표 약주 백세주의 리뉴얼을 기념하여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 한식 다이닝 ‘덕분’에서 이원일 셰프 및 ‘덕분’에서 기획한 백세주 팝업 레스토랑이 열렸기 때문이다.

백세주는 이번 리뉴얼된 제품으로 기존의 인삼 등 한약재의 맛을 줄이고, 청량함과 과실향이 좀 더 부각된 스타일로 바뀌었다. 특히 제품 라벨도 기존에 백세주를 마셔서 젊어진 아버지가 마시지 않아 나이를 들어버린 아들에게 회초리를 들고 있던 부분을 변경했다. 한자 ‘백(百)’의 캘리그래피(서체)를 힘 있게 승화, 기존의 중장년층 이미지에서 젊어진 백세주의 시장 진입을 노리는 것으로 보였다.

 

한국의 대표 약주 백세주가 한약재의 맛을 줄이고 청량함과 과실향이 좀 더 부각된 맛으로 바뀌고, 라벨도 바꾸는 등 젊은 층까지 공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 한식 다이닝 ‘덕분’ 제공

백세주는 1992년 국순당 창업주인 고(故) 배상면 선생이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고급 전통주의 필요성을 느끼고 개발한 술이다. 이러한 제조법은 1994년 KT(국산 신기술 인증 마크)를 획득했고 1998년과 2000년에는 주류업계 최초의 벤처기업으로 인정까지 받았다. 백세주는 몸에 좋은 술이라는 이미지에서 소주와 함께 넣어 마시는 50세주, 25세주 등 확장성을 가져가며 승승장구해 나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약주 시장이 조금씩 침체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도 유행하던 50세주를 위협하는 술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바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소맥의 등장이다. 특히 2005년 하이트맥주와 진로소주가 합병하면서 소맥이 드디어 하나로 뭉쳤다는 수많은 언론보도와 함께 한국 믹솔로지 주류의 시장은 소맥이 헤게모니를 가져가게 된다.

문제는 이 소맥의 도수가 10~15도로 소주보다는 낮고 맥주보다는 높았다. 즉, 백세주의 도수와 유사하게 가게 된 것. 당시의 주류는 지금의 상황과 달리 회식이 시장을 견인하고 있었던 상황. 소맥에서 피어나는 거품과 탄산, 그리고 섞어 마시는 재미는 그동안 쌓아놨던 약주 시장을 야금야금 뺏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이볼까지 등장, 이제는 위스키도 저도수로 마시는 시대가 돼버렸다. 약주 시장 입장에서는 보다 강력한 경쟁자가 둘이나 등장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약주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소맥이나 하이볼에 없는 것이 약주에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기품이라는 것이다. 흔들며 섞어주는 흥미로운 퍼포먼스는 소맥이나 하이볼이 가져갈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 한식과 잔잔한 약주를 즐긴다는 주안상 문화는 소주, 소맥, 하이볼이 따라가기 어려운 시장이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다만 행사의 아쉬움도 있었다. 행사의 페어링이 오직 백세주 한 종류뿐이었다는 것. 단맛이 더 빠진 드라이한 버전 및 도수를 낮춘 버전, 그리고 와인 잔에 따라 마셨던 만큼 키가 큰 백세주 병이 그리워진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백세주를 비롯한 고급 약주 시장이 부활했으면 좋겠다. 한국의 주류 시장은 한번 유행하면 그것에 너무 편승하는 모습이 있다. 와인, 위스키, 소맥, 하이볼 모두 마찬가지다. 약이 될 만큼 귀한 술이라는 의미의 약주. 자극적이고 눈요기의 시장이 아닌 발효의 미학과 기다림의 가치가 담아 작품 감상하듯 음미하는 우리 전통주 시장이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넷플릭스 백스피릿의 통합자문역할도 맡았으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에는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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