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이 8개월을 넘어선 가운데 정치권이 추진하는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이 일부 의료계 단체 참여 결정 이틀만에 부정적 기류 확산으로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의료계에선 ‘전공의·의대생들이 협의체에 부정적’이라는 점 외에도 ‘한동훈 대표가 주도하는 협의체에 윤석열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지 않고 있다’거나 ‘여야간 입장차도 큰 것 같다’는 등의 이유로 협의체 성과는 차치하고 ‘출범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전날 긴급총회에서 협의체 참여 여부를 논의한 결과 협의체 구성·운영이 결정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참여 결정을 유보하기로 했다. 전의교협은 “(협의체는) 전공의와 학생 의견이 반영될수 있는 의료계 단체로 구성돼야 하며 정부도 의료대란을 촉발한 당사자가 아니라 문제 해결에 적합한 인사가 참여해야 할 것”이라며 “의료대란을 극복하기 위해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하기로 한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또다른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이미 “정부의 태도 변화 없이는 협의체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참여 의사를 밝힌 대한의학회·KAMC 내부에서도 최근 이틀간 상황으로 부정적인 기류가 일고 있다. 두 단체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전공의·의대생 지지만 해달라”는 항의성 메일이 빗발쳤고, 일부에겐 “유병장수 하시라”는 악담 메일도 날아들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간 갈등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대한의학회·KAMC의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줘도 모자랄판에 지금은 오히려 어깃장을 놓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여당 주도 협의체에 야당이 적극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또다른 관계자는 “정치권서 먼저 제안한 협의체인데도 여야간 입장차가 있는 것 같다”며 “여야 참여 협의체가 중요한 건 ‘법제화’ 때문인데 야당이 불참하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한 대표가 주도하는 협의체에 정부(보건복지부·교육부)도 비협조적인 것 같다”고도 했다. 두 단체가 요구한 무조건적인 ‘자율적 의대생 휴학 승인’에 대해 교육부가 굳이 ‘복귀 조건 부 휴학 승인’이란 기존 입장을 강조해 협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협의체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의학회와 KAMC가 참여를 결정한 날 불참을 선언한 전의비의 관계자는 “협상·협의는 양측이 주고받을 게 있을 때 하는 것인데, 두 단체 참여 배경을 봤더니 아무것도 없더라”며 “이런 상황에 전공의·의대생이 거부하는 협의체에 나서봤자 정치권 들러리만 될 것”이라고 했다. 여당으로부터 협의체 참여 공문을 받은 15곳 중 한 곳의 관계자는 “의료계와의 협의에 앞서 여·야·정간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며 “어렵게 협의체 출범 동력이 생겼지만 정부와 정치권 상황을 보면 이미 성과를 기대하기도 힘들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협의체는 ‘의·정간 대화하라’는 국민 요구에 부흥하는 ‘퍼포먼스’이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며 “참여를 결정한 대한의학회·KAMC만 바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 단체는 참여 결정 이틀만에 벌어진 기류 변화에 이날 긴급 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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