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해 취직한 너, 너만 잘났냐. 백수지만 꿈 많은 나, 나도 잘났다. 젠,젠,젠 젠틀맨이다.”
배우 김수미(본명 김영옥)의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고인이 생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영정사진을 찍으며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을 꺼내놓은 일화가 주목받고 있다.
25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김수미는 이날 오전 서울성모병원에서 향년 7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 국민 곁에 있던 배우에 대한 추모를 전하는 가운데, 과거 그가 한 프로그램에서 영정사진을 찍은 일이 재조명됐다.
지난 2018년 김수미는 SBS ‘집사부일체’에 출연해 가수 이승기, 육성재 등 멤버들에게 영정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를 들은 멤버들은 다소 당황했지만, 김수미는 “진짜로 너희가 찍어준 사진을 쓸 것”이라면서 자신의 장례식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촬영을 위해 단풍이 진 수목원에 방문한 김수미와 멤버들. 이승기가 “우, 웃을 수 있는 사진을 원하시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묻자 김수미는 “가는 날까지 사고치고 가는구나”라는 느낌을 원한다며 긍정했다. 헌화한 뒤 영정사진을 봤을 때 웃음이 났으면 좋겠다는 것.
그는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곡소리가 나는 대신 사람들이 웃으면서 춤을 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캐롤 ‘징글벨’을 부르며 스텝을 밟아보이기도 했다. 이어 “웃으면서 ‘갔구나. 우리는 김수미를 잠시 기억하자’ 그렇게 보내주면 된다”고 덧붙였다.
영정 사진 의상으로 강렬한 마젠타(밝은 자주) 색상 드레스를 선택한 김수미는 붉은 단풍이 깔린 곳을 배경으로 선택해 인생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담았다.
그는 “나이 많아서 가는 사진은 이것도 좋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거다. 누구나 죽는다”며 “나는 배우고 돌아이였으니까 장례식도 돌아이로 가자고. 마지막까지”라고 말했다.
그렇게 ‘일용엄니’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은, 차진 욕으로 국민에게 웃음을 안긴 배우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했다. 빨간 단풍잎 위에 드러누운 파격적인 포즈로 영정 사진을 찍던 그는 “어머, 저 단풍잎 색 좀 봐. 나 죽기 싫어”라며 감상에 젖기도 했다. 막상 죽음을 앞뒀다고 생각하니 삶에 대한 의지가 되살아난 것.
또 김수미는 “영정사진을 두 개 두겠다. 하나는 장례식장 입구에, 나머지는 제단 위에 두겠다”며 죽는 날까지 문상객을 즐겁게 해줄 생각에 들떴다.
1971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수미는 1980년 32세의 나이에 국민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로 할머니를 연기해 울림을 남겼다. 특유의 호탕하면서도 억척스러운 어머니상으로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에 출연, 자식들을 다그치는 연기로 웃음을 안겼다. 2006년 MBC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 3에서 어릴 적 들은 노래에 기반을 둔 ‘젠틀맨’을 불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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