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연설은 정부의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대통령이 예산안에 관해 설명하는 연설을 말한다. 보통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는 10월과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하는 6월에 이루어진다. ‘예산안을 잘 심사해서 제때 통과시켜 달라’는 간청이 담겨 있으니 총리가 대독하지 않고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들은 시정연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물론 민주화 이후에 집권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소극적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전에 대통령의 직접 연설은 1988년(노태우), 2003년(노무현), 2008년(이명박) 등 모두 세 번에 불과했다.
박 전 대통령이 2013년부터 4년 연속 시정연설을 직접 하며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5년 연속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고, 2017년 6월에는 추경 시정연설까지 직접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2022년과 지난해엔 국회에 직접 나왔다. 대통령이 국회에 나가 연설하면 국정에 관한 국회의 협조를 구하기가 용이해진다. 국회를 존중하고 국민과의 소통에 적극적이라는 점도 부각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내달 초 진행될 2025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을 직접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야당이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법을 밀어붙이는 점 등이 마뜩잖을 것이다. 야당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부인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해 서울 한남동 관저까지 민주당 의원들이 직접 찾아가는 등 ‘영부인 망신주기’에 힘을 쏟고 있다. 국회에서도 야당 의원들이 환대해 줄 리가 없다. 윤 대통령의 불편한 심정은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했다. 현직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건 1987년 체제 이후 처음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회에서 푸대접이 예상되더라도 빠짐없이 국회에 갔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았을 때도 야당의 야유·항의·퇴장·피켓시위 사례는 수없이 많다.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나서지 않으면 불명예스러운 기록 하나를 또 추가하게 된다. 윤 대통령이 국회를 멀리할수록 대야 관계도 더 꼬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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