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사과는 국민의 분노를 누그러뜨려 위기를 벗어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사과에도 정석이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과할 때 가장 주의할 점은 ‘만약’ 혹은 ‘만일’ 같은 가정문을 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게 잘못됐다면 제가 사과를 해야겠죠”라는 말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이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들리기 때문이다. 또 늦지 않게 제때하고,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개선 의지와 보상 의지를 밝혀야 한다.
보상이나 극복책은 잘못의 크기보다 커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10년 당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의 특혜 채용과 관련해 가진 기자회견은 부적절한 사과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그는 대응책으로 딸의 채용을 취소하겠다고만 했다. 자신의 실수만큼만 되돌려 놓는 극복책은 아무런 호소력이 없다. 반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잘못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진정한 사과를 통해 오히려 리더십을 강화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아들 비리 문제로 고개를 숙인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도 성공적인 사과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사과에 서툴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윤 대통령은 4·10 총선 참패와 관련해 엿새 만인 4월16일 국무회의에서 13분간 모두발언을 했다. 그러나 국정 최고 지도자로서 책임과 혁신 의지를 찾아보기 어려운 변명으로 비쳤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4시간이 지나서야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비공개회의에선 ‘대통령부터 국민의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고 발표했다. 초유의 ‘비공개 대국민 사과’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윤 대통령이 실제 이 비공개 발언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오늘 자신과 부인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 등과 관련해 담화 및 기자회견을 갖는다. 정국의 중대 분수령이 될 이번 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김 여사 문제 등에 사과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이 사과의 정석 코스를 밟아 국민 마음을 움직인다면 정국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설픈 사과만 늘어놓으면 국민 반감만 부르고 사태는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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