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끝났다. 미국의 대선은 늘 주목받는다. 세계의 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이번 선거는 미국이 최강대국으로 발전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던 다양성의 지속과 제한을 놓고 찬성과 반대의 이분법으로 딱 갈라졌다는 점도 각별했다. 또한 미국은 우리나라의 안보와 경제에 핵심적인 파트너이기에 유난한 이목을 받아 왔다.
초접전 오리무중을 예측한 거의 모든 여론조사와는 다르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조기에 결정되었다. 선거 승패의 열쇠라는 ‘선벨트’와 ‘러스트벨트’ 7개 경합 주에서 초반 우세가 시종일관 유지되는 완승이었다.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폭도들의 국회의사당 난입과 같은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을 깨뜨리는 폭력 사태의 재발, 최종 당선자 확정에 13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생각하면 전광석화 같은 결과였다. 카멀라 해리스와 트럼프가 쏟아부은 4조8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의 선거 캠페인과 하루에 1달러면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살릴 수 있다는 방송 광고캠페인을 생각하면 어떤 허망함도 불쑥 일어나는 시간이었다.
선거는 인간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주장의 경연장’으로서 역할하는 위대한 제도이다. 전체·독재 국가와는 다르게 보통·평등·비밀·직접 선거를 실행하는 것은 인간과 공동체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자유로운 주장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주장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보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행위’로 상대의 주장은 논박하고 자신의 주장은 옹호하는 논쟁이다.
올바른 주장은 인간의 양식을 일깨우고 공동체의 진보에 기여한다. 1644년 가톨릭의 엄격한 권위주의에 저항하며 표현에 대한 사전 검열의 폐지를 요구한 존 밀턴, 1963년 노예제도의 직간접적인 족쇄에 도전하여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피부색과 관계없이 인권은 동등하다고 역설한 마틴 루서 킹 목사, 340년 동안 지속된 인종 분리 정책하에서 흑인 원주민을 학살, 고문, 강간, 구금으로 잔혹하게 침해한 백인들의 범죄를 공개적인 고백을 전제로 처벌을 면제하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발족을 가능케 한 199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용기는 올바른 주장의 사례이다.
주장은 충돌하고 갈등하는 과정이 예정되어 있는 행위이다. 그러나 주장은 논쟁거리인 이슈에 대한 사실에 근거한 의견이지, 상대의 자존심과 인격에 대한 막말 공격이나 공동체의 존엄과 협력을 부정하거나 탈법적인 힘으로 강제하려는 언행이 아니다. 왜곡, 거짓말, 위협, 선동, 가스라이팅은 올바른 주장이 아니다. 정치인은 누구나 명심해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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