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2월 광주형무소 복역 중 행방불명
12월 17일 고향 제주로 봉환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광주형무소 옛터에서 발굴된 유해 중 4·3 행방불명 희생자의 신원을 75년 만에 확인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신원 확인은 도외지역 발굴유해에 대한 유전자 감식 시범사업의 확장 과정에서 이뤄낸 성과다.
제주도와 4·3평화재단은 지난해 ‘도외지역 발굴유해 유전자 감식 시범사업’을 통해 대전 골령골에서 첫 4·3 희생자 신원을 확인한 이후, 사업 확대를 추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광주형무소 옛터 발굴유해의 유전자 정보를 4·3 희생자 유가족의 유전자 정보와 대조한 결과, 새로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원이 확인된 고(故) 양천종(1898년생)씨는 제주시 연동(리) 출신으로, 4·3사건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은 희생자다.
4·3 당시 집이 불에 타자 가족들과 함께 노형리 골머리오름에서 피신 생활을 했던 그는, 1949년 3월 토벌대의 선무공작으로 귀순했다. 주정공장에서 한 달여간 수용생활을 한 후 풀려났다.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다시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해진 소식은 1949년 11월경의 안부 편지였다. ‘형무소에서 잘 지낸다’는 내용의 이 편지 이후, 가족들은 12월 4일자로 형무소로부터 사망 통보를 받았다. 당시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밭을 팔아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유해를 찾지 못했다.
이번에 확인된 유해는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형무소터 무연분묘에서 발굴된 261구의 유해 중 하나다. 광주형무소는 1908년 광주감옥으로 출발해 1923년 광주형무소로 개칭됐다. 1961년에는 광주교도소로 명칭이 변경됐다. 1971년 현재의 북구 문흥동으로 이전했다. 이곳 무연분묘터에서 법무부 관리 111구를 포함해 총 261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영문도 모른 채 타지에서 75년 간 잠들어 있던 희생자에 대하여 예우를 갖추어 고향으로 모셔올 계획이다.
희생자의 유해는 오는 12월 16일 생존해 있는 딸 등 유가족과 제주4·3희생자유족회, 관계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계 절차를 거쳐 유족회 주관으로 제례를 지낸 후 화장될 예정이다.
12월 17일에는 항공편으로 75년 만에 고향 제주로 봉환된다. 제주도는 유가족과 제주지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환식과 신원확인 보고회를 거행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제주도 내에서는 417구의 4·3 희생자 유해가 발굴돼 144명의 신원이 확인됐으며, 이번 도외지역 유해 신원 확인으로 총 145명으로 늘었다.
제주도는 올해 대전 골령골 70구와 경산 코발트 광산 42구 등 도외지역 발굴유해 112구에 대한 유전자 감식을 진행 중이다.
현재 행방불명 4·3희생자 유가족 2233명의 유전자 정보가 확보된 상태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진실화해위원회와 협업을 통해 대전 골령골 발굴 유해에 대한 유전자 정보를 공유하며, 4·3희생자를 포함한 대전 산내사건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 공동사업도 추진 중이다. 제주도는 작년 감식한 대전골령골 발굴유해 70구의 유전자 정보를 진화위에 제공했으며, 올해는 진화위로부터 273구의 유전자 정보를 제공받을 예정이다.
오영훈 지사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대전 골령골 발굴 유해에 대한 유전자 감식과 제주4·3 유해 발굴 사업의 연계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며 “지난해 대전골령골에서의 첫 신원 확인에 이어 타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도외지역에서 추가로 신원이 확인돼 매우 뜻깊다”고 말했다.
오 지사는 이어 “대전골령골, 경산 코발트광산, 전주 황방산, 김천 등의 발굴유해에 대해서도 타 지자체와 협력해 4·3 희생자 신원확인 사업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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