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4명 “비혼출산 긍정적”
20대 응답비율 10년 새 12.5%P↑
삶의 동반자 원하는 젊은 층 욕구 반영해
법적 부부 아닌 동거인에 준가족 혜택
41% “‘동거돌봄제’ 이용 땐 출산 의향”
‘배우자 필요 없지만 내 아이는 갖고파’
‘출산권’ 보장한 모자보건법 개정 표류
비혼출산, 국내선 합법도 불법도 아냐
의학계 법률혼·사실혼만 정자공여 허용
“다양한 가족형태 수용해야 출산 늘어”
직장인 이모(35)씨는 30대에 접어들어 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다만 결혼제도에 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씨는 “우리나라는 가족을 만들 때 흔히 결혼을 먼저 생각하는데 내가 원하는 사랑의 대상은 남편이 아니라 직접 돌볼 아이였다”고 말했다. 한때 비혼출산을 고려했던 이씨는 아이를 양육할 본인 상황과 사회적 여건 등을 고려해 40대 중반에 입양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이씨 주변에 미혼인 30대 중후반 이상 지인이 많지만 “이들이 누군가와의 관계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씨는 “이들도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혼인관계에 달려오는 책임은 거부해도 마음 맞는 사람과 서로 돌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한다”고 전했다.
어느 때보다 1인 가구 수가 많고 낮은 결혼·출생률이 고민인 요즘이지만, 20·30대 사이에서 ‘관계 맺기’ 의사는 결코 낮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현재 결혼 의향이 없다고 해서 평생 혼자 살길 바라는 것도 아니며, 결혼하지 않겠다고 해서 모두가 아이까지 가질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17일 세계일보가 데이터 컨설팅 기업 피앰아이(PMI)와 지난달 4∼7일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결혼 의향 유무가 누군가와의 관계 맺음 욕구와 동일하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혼인 상태가 아닌 동거관계여도 가족에 준하게 사회·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가 있다면 이를 이용할 생각이 있다는 응답률은 57.0%로, 10명 중 6명은 긍정적으로 답했다.
전체 응답자 중 미혼 혹은 사별·이혼 상태인 이는 459명이었는데 그중 ‘향후 법적으로 혼인관계를 맺을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이는 145명(31.6%)에 그쳤다. 206명(44.9%)은 ‘혼인 의향이 없다’고 했으나 이 중 71명(7.1%)은 ‘동거돌봄제도는 이용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다. 배우자 없이 독신으로 살거나 가족을 만들고 싶으면 결혼해야만 하는 한국 현실에서 결혼제도만으로는 누군가와 가족으로 연결돼 살고 싶어 하는 다양한 사회적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연인 또는 친구와 동거할 시 체감도가 사실혼과 비슷한 수준에 그칠 수 있어도,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가 훨씬 많아진다. 법적 배우자가 아닌 동거하는 이도 아이를 위해 출산·육아휴가를 사용할 수 있고, 보호자 확인을 엄격히 하는 아이 돌봄시설에도 보호자로서 등록할 수 있다. 만약 동거 상대만 직장인이라면 법적 부모가 아님에도 연말정산 시 소득공제, 세액공제도 가능하다. 악용할 구멍을 잘 메운다면 ‘진짜’ 가족처럼 실질적인 혜택이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전체 응답자 1000명 중 40.7%는 동거돌봄제도를 이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파트너와 출산·양육할 의사가 있다’고 조사됐다. 이들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도 제도적으로 아이가 보호받고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출산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비혼출산에는 1000명 중 35.1%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비혼출산이란 결혼하지 않았지만 혼자 출산하거나 혼인하지 않은 연인과 출산하는 형태 등이 해당한다. 대표적으로 정자공여(기증)를 통해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씨가 있다. 지난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만 13세 이상 응답자 3만6000여명 중 67.4%가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 37.2%는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한 바 있다. 특히 20대에서는 42.8%가 결혼 없이 자녀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2014년에는 30.3%였던 비율이 10년 만에 12.5%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결혼이 출산의 전제조건인 한국사회
결혼 후 출산에 익숙한 우리나라지만 배우자가 없다고 모든 여성이 출산에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모(36)씨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이면 한 번쯤 생각해보는 ‘나는 아이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별달리 고민한 적이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나는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걸 자신의 “본능”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 미혼인 김씨는 앞으로도 남편을 만들 생각이 없다. 김씨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서로 합의한 때까지 잘 지내다가 헤어지는 것은 굉장히 개인적인 영역의 일”이라며 “정서적 유대관계를 혼인이란 제도로 묶어두고 관계가 변하면 법원 허락을 받아야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거부감도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38살까지 육아에 집중할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만든 뒤 정자공여를 통해 출산할 계획이다.
진모(29)씨는 2020년 말 취업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됐는데 “이때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고 느꼈고 이혼 시 남이 될 수 있는 배우자보다 핏줄로 연결된 내 아이를 갖고 싶어졌다”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결혼할 만한 상대를 찾지 못한다면 혼자라도 아이를 낳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결혼을 앞둔 진씨는 “한때 배우자를 찾지 못한다면 출산을 포기해야겠다는 심정도 있었다”며 “살면서 대부분의 일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출산은 그렇지 않아 무력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출산이 결혼 다음 단계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결혼할 의향이 있든 없든 현재 배우자가 없는 경우 공통으로 언급되는 이유가 있었다. 경제적 능력이다. 결혼 의향은 있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응답자의 70.3%가 ‘경제적으로 준비되지 않음’(1·2순위 중복선택)을 그 이유로 택했다.
법적으로 혼인관계를 맺을 의향이 없다는 응답자는 ‘부부(연인) 관계 필요성을 모르겠음’(49.5%·1·2순위 중복선택), ‘상대방과 가족관계로 엮이고 싶지 않음’(42.2%) 등 다양한 이유를 꼽았는데 ‘경제적 능력 없음’(38.3%)이 3위에 올랐다. 특히 1순위만 물었을 때 가장 많이 택한 이유가 ‘경제적 능력 없음’(31.6%)이었다. 일부는 결혼을 경제적 부담 때문에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결혼은 안 해도 동거돌봄제도는 이용할 의사가 있다는 71명도 결혼식 준비나 주거 마련으로 드는 경제적 부담, 혼인 시 확장되는 가족관계 등으로 결혼 의향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1·2순위 중복선택)로 ‘부부(연인) 관계 필요성을 모르겠음’을 꼽은 이는 38.0%에 불과했다. 45.1%는 ‘상대방과 가족관계로 엮이고 싶지 않음’, 40.8%는 ‘경제적 능력 없음’을 더 큰 원인으로 택했다.
◆합법도, 불법도 아니라는 비혼출산
지난 3월 난자 동결(냉동) 시술을 받은 정모(30)씨 역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에 ‘왜’가 없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내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믿음은 확고했는데 아이의 아빠이자 남편으로 삼을 사람을 아직 못 찾았다. 정씨는 지난해 산전 검사를 받았는데 당시 난소 나이가 36세로 높게 나와 급히 난자 동결부터 결정했다.
정씨는 “결혼할 상대를 찾지 못할 경우, 국내에서 비혼출산이 합법화된다면 혼자서라도 아이를 갖겠지만 법적으로 계속 현재 상태와 같다면 아이를 입양하거나 해외로 나가 아이를 가질 것 같다”며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아이를 정말 원하는 여성에게 출산할 권리를 지켜주면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 바람”이라고 말했다.
정씨처럼 우리나라에서 비혼출산이 불법인 줄 아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국내에서 비혼출산이 불법으로 규정돼 있지는 않다. 관련법인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4조 등에 따르면 배아생성의료기관은 배아를 생성하기 위한 시술 시 배우자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배우자가 없는 미혼은 혼자서 정자공여 시술을 받는다고 해서 불법으로 볼 수는 없다는 해석이다. 보건복지부도 과거 “법적 위반 사항은 없다”며 불법이 아니라고 확인했다.
그럼에도 대한산부인과학회가 만든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상 정자공여 시술 대상을 법률혼·사실혼 관계로만 규정해 현실적으로 미혼 여성이 출산하기란 어렵다. 미혼 여성의 출산을 열어주는 모자보건법 개정 등이 계속해서 늦어지면서 우리나라는 불법도, 합법도 아닌 상황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부위원장을 역임한 김영미 동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출산하는 가능성을 아예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들의 출산이) 되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안 한 것”이라며 “기존 관성대로 산부인과도 굳이 (지침을) 변경할 이유를 모르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부모가 모두 있어야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줄 수 있다며 비혼출산은 ‘이기적’이라고 주장한다. 비혼출산을 계획하는 김씨는 “이혼 가정도 많고 각자의 이유로 한부모나 조부모와 자라는 아이도 많지 않냐”며 “한쪽 부모만 있다고 아이 삶의 만족도가 낮을 것이라 재단하거나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는 일은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혼도 사회적으로 약속된 제도일 뿐, 더 크고 영속적인 사랑을 주고 싶어 출산하고 싶다”며 “한부모 가정이면 아이에게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한다는 시선에 동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 저고위 비상임위원(전 상임위원)인 홍석철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변화한 개인의 가치 등을 고려했을 때 결혼·출산·양육은 사회적으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수용할 수 있어야 증가할 것”이라며 “기존 조사를 보면 동거관계나 한부모 가정에 포용적인 나라에서 가족의 가치를 우리나라보다 훨씬 중시하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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