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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세계속으로] 유력 대선 주자의 사법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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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1-18 23:59:35 수정 : 2024-11-18 23: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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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엔 단호한 법집행 요구하며 자신에겐 관대
정치 음모 치부하며 사법부 권위 훼손 말아야

지난 대선에서 당선을 코앞에 두었던 후보, 이후 치른 총선에서 승리하며 국민적 지지를 증명한 리더, 그리고 현직 대통령이 워낙 엉망이라 2027년 대선에서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큰 정치인이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여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고꾸라질 위험에 처했다. 한국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프랑스 사정이다.

프랑스의 극우를 대표하는 마린 르펜의 사법 리스크는 공금 횡령이 중심이다.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 민족동맹(RN)의 전신 민족전선(FN)은 2004년부터 2016년 사이 유럽의회에서 활동하면서 당직자들을 의원 보좌관으로 허위 등록하여 800만 유로(120억원)에 달하는 공금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당시 르펜의 비서실장은 유럽의회 보좌관으로 임금을 받았으나 몇 년 동안 실제 의회에 머문 시간은 720분에 불과했다. 르펜의 경호실장마저 의회 보좌관으로 등록했으니 유럽의회 의정 활동을 제멋대로 해석한 셈이다.

10여년 가까운 장기 조사 끝에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르펜에 대해 5년 징역형과 30만유로의 벌금,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구형했다. 5년 가운데 2년은 집행유예가 불가능한 징역형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검찰의 강력한 입장을 엿볼 수 있으며, 이에 더해 판결이 최종 확정될 때까지 피선거권을 일단 박탈하는 임시 결정을 요청했다.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1심 판결에 따라 르펜은 항소를 통한 연기 전략이 불가능할 수 있다.

검찰의 구형에 르펜과 극우 세력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프랑스 국민의 민주적 의사표시를 막으려는 정치적 재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르몽드지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평소에는 사법부가 범죄자에 대해 너무 무르다고 비난하던 세력이 갑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입장으로 돌변하는 모습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법부는 이민자나 서민 등 사회적 약자의 일탈은 강하게 통제하지만, 강자 정치인의 언행은 자유롭게 눈감아 줘야 한다는 궤변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은 미국의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에게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약자에게는 단호하고 강압적인 판결과 집행을 요구하면서 자신을 향한 사법부의 칼날은 정치적 음모라고 치부해 버리는 레퍼토리는 매우 닮았다.

프랑스, 미국, 한국 정치와 유력 정치인의 사법 리스크는 저마다 다르지만 뚜렷한 공통점이 돋보인다. 권력의 게임을 벌이는 유력 정치인은 상식을 벗어나는 비리와 범죄의 경계를 쉴 새 없이 드나드는 듯하다. 권력을 잡으면 모든 일이 무마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듯하고 범죄가 밝혀져도 정치적 탄압이라며 여론을 동원하여 얼버무리는 전략을 편다.

슬픈 장면 하나. 프랑스는 별의별 일을 갖고 다 시위를 하는 나라지만 르펜의 사법 절차에 저항하는 거리의 정치를 벌이지는 않는다. 극우 정치 세력조차 염치는 있는지 개인의 비리나 범죄에 대한 절차를 ‘방탄’하기 위해 사법부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에는 신중하다. 의회 다수 세력이 서초동과 광화문에 시민을 동원하는 시위가 슬픈 이유다.

기쁜 사실 하나. 수백만 표를 얻은 강자나 권력자에게도 적용되는 사법 ‘리스크’는 사법부의 자율성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리스크라 함은 확신이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다수의 정치 세력이라 하더라도 모든 영역을 압도하고 지배할 수는 없는 다원적 선진 사회라는 의미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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