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학생들 “학교측 일방적 논의 반대”
총학 “20일 총회서 공학 전환 찬반 투표”
학령인구 줄어 대학들 생존 경쟁 심화
덕성·숙명 등 共學 추진했다 반발·무산
전환 상명대 “구성원 설득 가장 공들여”
전문가 “여대 역할 시대 맞게 변화 필요
특화된 교육 등 차별화·자구책 마련을”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규탄하는 학생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학교 측의 “결정된 건 없다”는 해명에도 학생들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동덕여대생들은 학생들을 배제한 채 진행한 학교 측의 일방적 논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시위는 외국인 남학생 입학 허용을 두고 성신여대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공학 전환 논란이 여대 필요성 논쟁으로 확산하는 데 대해 여대의 차별성을 높이는 등 여대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동덕여대에 따르면 앞서 학교 발전계획 수립 과정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한 사실이 알려진 뒤 반발한 학생들 시위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불법시위’로 규정하고 “폭력을 주도하는 학생들의 의견은 전체 의견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학생들 난입과 기물 훼손 등으로 인한 피해액을 24억4434만∼54억4434만원으로 추정한 학교는 향후 손해배상 청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가 정상화되면 공학 전환 논의를 진행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에 맞서 총학생회는 20일 학생총회를 열고 공학 전환 관련 투표와 총장 직선제 관련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낮은 선호도, 떨어진 경쟁력
학생들은 학교가 의견수렴 과정 없이 공학 전환 논의를 진행한 데 대해 ‘비민주적’이라고 반발한다. 동덕여대의 구성원은 ‘여성’이고 “여대는 여성을 위한 공간”이라는 입장이다. 최현아(22) 동덕여대 총학생회장은 세계일보와 만나 “절차 문제가 가장 크다. 총학생회도 공학 전환 논의를 에브리타임(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며 “대학 측이 중요한 논의 과정에서 학생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1학년 안모(19)씨는 “동덕‘여대’라는 이름이 없어지면 학교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며 “단순히 남학생이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강모(19)씨는 “여성인권을 여대처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곳은 없다”며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이란 의미도 있다”고 했다.
여대의 공학 전환 고민은 이전부터 있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대학들의 생존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데 여대는 수험생의 절반인 여성만 지원할 수 있어서다. 남학생 취업률이 더해지는 공학보다 취업 시장 경쟁력이 낮고 학벌 서열에서도 밀린다는 우려도 있다.
송기창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총장(숙명여대 명예교수)은 공학 추진 배경에 대해 “입학 자원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이라면서 “여대에 대한 지원자들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송 총장은 “이전에는 여성이 기회를 더 얻기 위해 여대를 갔는데 지금은 여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며 “여대 졸업생을 향한 사회적 편견에 대한 부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여대(생)는 거른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직장인 커뮤니티를 비롯한 온라인상에 퍼지는 등 젠더갈등을 부추기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여대 학생들은 “여대가 필요한 이유”라는 반응이다. 여대의 공학 전환 갈등 이면엔 젠더갈등 문제도 자리 잡고 있다.
◆타 여대, “공학 전환 검토 안해”
앞서 1996년 상명여대에서 남녀공학으로 전환한 상명대는 학생 수가 줄어들면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우려에서 공학 전환을 추진했다. 상명대 관계자는 “전환 이후 경영대나 컴퓨터공학과 등 공대를 강화하고 학과를 다양화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몇몇 여대가 공학 전환을 추진했지만 내부 반발로 무산됐다. 덕성여대는 2015년 당시 이원복 총장이 “성(性)을 뛰어넘은 경쟁이 불가피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공학 검토를 추진했지만 학생들이 거부했고, 숙명여대와 성신여대도 관련 논의를 추진했다가 모두 중단했다. 상명대 관계자는 “전환 당시에 재학생과 동문회 등 학교 구성원을 설득하는 과정만 수년이 걸렸다”며 “구성원 설득에 가장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전국에 남은 4년제 여자대학은 이화·숙명·성신·동덕·덕성·서울·광주여대 7곳이다. 세계일보가 동덕여대를 제외한 다른 여대에 공학 전환 계획을 문의한 결과 모두 “공학을 추진하거나 논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외국인 남학생 입학 허용을 두고 갈등이 불거진 성신여대도 공학 추진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덕성여대 관계자는 “대학 선호도가 낮아져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여대만의 정체성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학교 구성원들도 많다”고 강조했다.
◆“여대 소명은 다 하지 않았다”
2005년 여성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앞지르고 2021년 기준 진학률이 각각 81.6%, 76.8%로 격차가 커지면서 여대 필요성이 다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여대의 역할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학생이 줄면 전공 다양성과 학교 경쟁력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여대를 유지하려면 위상 하락을 막기 위한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기획연구위원은 지난 8일 열린 ‘여성혐오와 여자대학, 그 변화의 시작’ 토론회에서 특정 분야에서 여성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소수자에 대한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등 “여대의 현대적 의미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 총장은 “여대의 필요성이 과거와 달라졌는데 단순히 투자를 늘리고 홍보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여대를 공학으로 바꾸는 게 (만능) 해법이 되지는 않겠지만 (공학 전환 등) 여대의 변화 추세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여대 틀을 유지한다면 여학생의 특화된 교육 등을 통해 차별화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나임윤경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과)도 “대안적인 것들을 내놓지 않으면 (여대가) 있을 이유가 없다”며 미국의 ‘세븐 시스터즈’를 예로 들었다. 세븐 시스터즈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모교로 유명한 웰즐리대학이 포함된 미 동부 명문 대학 7곳이다. 이 중 5곳은 여전히 여대로 운영하며 높은 경쟁력을 보인다. 280개가 넘던 미국 여대도 지금은 30여개로 쪼그라들었는데, 다른 대학교와 결연을 하고 공동학위를 수여하는 등 여러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의 국립 여대인 오차노미즈여대는 성소수자를 받아들이는 등 세계 각국 여대도 대학 역할을 바꿔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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