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대온실 수리보고서』 김금희 “세상 어딘가에는 지금이 아닌 시간이 흐르고 있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궐내 곳곳에 흙구덩이를 내며 기세 좋게 쏟아지던 장대비와, 그 장대비가 그치면서 수직 에너지가 모든 공간에 스며들어 펼쳐 보인 오후의 말간 풍경, 그리고 폭우와 그 말간 풍경에 이상하게 감정이 빨려 들어간 젊은 그녀⋯.

해설사와 함께 창덕궁을 둘러보기 시작한 첫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피해서 어느 전각의 처마 밑에 제법 오래 머물렀다. 전각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되게 이질적으로 느껴지던 건물이었다. 20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소나기와 그것이 만들어낸 풍경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금희는 당시 편집자로 일하면서 창덕궁과 창경궁에 관한 책을 만들고 있었는데, 동궐 책 작업을 하면서 어려웠던 가정 상황을 딛고 조금씩 일어설 수 있었다. 책은 가늘고 섬세한 필선으로 조선 후기 두 궁의 모습과 지붕의 기왓장, 담장의 돌벽, 우물과 장독대, 나무와 화초까지 상세하게 그려진 「동궐도」를 바탕으로 각 전각의 역사와 쓰임을 살피는 전문서. 어느 여름날 동궐에서 만난 그 소나기의 순간은⋯ 그에겐, 어떤 치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궐에 대한 책을 쓰고 싶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출발하면 좋을까. 그러다가 잔류 일본인 할머니가 인천 출신인 그에게 친숙한 강화에 있다는 소식을 육년 전 우연히 접했다.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신문 기사도 제법 있었고 논문도 있었다.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을 엮어서 소설을 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느 날 확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한 할머니가 어린 소녀와 함께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 머릿속에서 자꾸 아른거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근대의 유명 건축물이자 제국주의 상징으로 역사 청산의 대상으로 여겨져 여러 번의 위기 끝에 잔존한 ‘생존자’ 창경궁 대온실이 잔류 일본인 할머니의 삶과 엮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재청의 창경궁 대온실 수리보고서를 비롯해 관련 자료를 찾아 읽어나갔다. 취재와 공부는 대온실에서, 대온실에서 일했던 사람들으로, 다시 대온실을 만든 사람 후쿠바 하야토에게로, 당시의 풍경과 사람들에게로⋯. 이야기들이 차근차근 붙으면서 스케일도 커져갔다. 인물도 늘어났고 인물 간의 관계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소설가 김금희가 십대 시절 상처를 입은 여성 영두가 창경궁 대온실 수리보고서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깊은 상처와 마주하고 인생의 수리와 재건에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대온실 수리보고서』(창비)를 발표했다. 지난해 잡지 『창작과비평』에 부분 연재를 거친 작품으로, 그의 첫 역사소설.

‘석모도 헤밍웨이’로 불렸던 삼십 대 여성 영두는 ‘추진체’ 은혜의 소개로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혼자 남게 된 영두는 중학 시절 창경궁 근처의 낙원하숙에서 생활한 과거를 가슴 아프게 떠올린다. 주인 문자 할머니와, 도도하고 이기적인 할머니의 손녀 리사, 그리고 원서동에서 만난 첫 사랑 순신과의 기억도.

“돌아보면 항상 어떤 장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삶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어야겠다 싶은 장소들은 아예 발길을 끊어서 최대한 망각할 수 있게 노력해왔지만 이 일을 맡으면 그곳에 대해 생각하고 더 알게 될 것이었다. 거기에는 일 년 남짓의 내 임시 일자리가 있었고 600년 전에 건축된 고궁이 있었고 잊지 않으면 살 수가 없겠구나 싶어 망각을 결심한 낙원하숙이 있었다.”(17쪽)

이야기는 현재의 대온실 보수 공사 작업과 함께, 일제 강점기 대온실을 만든 일본인 후쿠다 노보루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한다. 후쿠다의 인생과 그의 주변 인물의 족적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는 유장한 100년의 현대사 속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보수공사 중 비밀의 땅 밑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된다. 영두는 그곳에서 발견된 시신이 문자 할머니와 연관이 있음을 예감하고 파고들다가 마리코로 불렸던 문자 할머니의 어린 시절 사건과 대면하게 된다. 영두는 이를 통해서 마침내 자신의 상처와 올곧게 마주하게 되는데.

“장 과장 말처럼 그냥 지나가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이 원하는 건 사면이 유리로 된 온실의 아름다움이지 그 아래 무엇이 있었는가가 아닐 테니까. 땅 밑은 수리와 복원의 대상도 아니니까. 하지만 질서에는 어긋날 것이다. 그렇게 묻은 상태로는 전체를 알기란 어려울 것이다. 공동과 침하가 계속되겠지. 개인적 상처들이 그렇듯이. 그렇게 한쪽을 묻어버린다면 허술한 수리를 한 것이 아닐까.”(209쪽)

소설은 한때 동양 최대의 유리온실이었던 창경궁 대온실을 배경으로, 그 안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가슴 저릿한 비밀과, 존재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인간들의 신념이 감동적으로 버무려져 있다.

소설가 김금희는 왜 창경궁 대온실 이야기를 써야만 했을까. 그가 애증의 창경궁 대온실에서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김 작가를 지난달 8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장편이어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텐데, 무엇이 가장 어려웠는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시대여서 아무래도 어려웠다.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심지어 계란 가격은 얼마였는지 등 사소한 것조차 다 찾아봐야 했다. 어려웠던 것은 아무래도 자료를 읽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자료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 줄 몰랐다. 소설 후쿠다의 모델인 후쿠바 하야토의 회고록의 경우 번역이 되지 않아서 일부의 번역을 맡기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번역기를 이용해 읽기도 했다(웃음). 시간이 많이 걸렸다. (건축사 일이나 사무소 분위기는 리얼하더라) 건축사가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도 봤고 보고서 같은 것도 봤다.”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설을 『창작과비평』에 4회, 약 900매쯤 연재한 뒤 지난 1월말에 뒷부분을 다 못 쓰고 남극을 가게 됐다. 남극이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어서 혹시 사고를 당할 수도 있겠다고 혼자 생각하고 뒷부분의 줄거리를 요약한 다음에 편집자에게 부탁했다. 혹시 이것이 유작이 되면 줄거리를 붙여서 꼭 책을 내달라고.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느냐고 편집자가 묻더라. 이미 써 놓은 원고가 아까워서 내가 죽더라도 책은 나와야 된다는 생각을 혼자 한 것이다. 그런데 뭐 여행은 되게 안전했고 3월 초에 무사히 돌아왔다.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별 생각을 다 하고(웃음).”

―소설의 배경으로 왜 창경궁 대온실을 택한 것인가.

“창경궁 대온실은 그냥 둘까 아니면 없앨까 하는 말이 늘 나올 정도로 환영받지 못했다. 갈등의 중심에 있었고 보는 눈도 곱지 않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어느덧 100년을 살아냈다. 잔류 일본인 할머니 모습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제가 워낙 아웃사이더들을 좋아해서 아웃사이더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해왔다. 이번에는 건물이 그런 성격을 가진 인물로 보였다. 마치 그런 개인의 역사를 대변하는 공간으로 적당하다고 생각됐다. (친일 잔재라며 다 없애버리자는 사람도 있는데) 동물원은 확실히 궁 원래의 기능을 훼손한 것이라서 옮기고 복원하는 게 맞지만, 식물원의 경우 궁 기능을 훼손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좀 의문이어서 보존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이 이런 것을 보면서 다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기도 하고.”

창경궁은 조선 성종 때인 1483년 건축돼 창덕궁과 함께 동궐(東闕)로 불렸고, 숙종 시절 장희빈이 처형되고 영조 때의 사도세자가 뒤주에 가둬 죽은 역사적 장소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섰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격하됐다가 1983년 동물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창경궁의 이름을 되찾았다. 그는 “한국전쟁 때에는 제대로 관리가 되지 못해 동물들이 죽거나 방치됐고, 전쟁 직후에는 복원을 위해서 시민들에게 기부를 받기도 했다”며 “소풍 장소로 큰 인기를 끌면서 왕가의 수입원으로 인식돼 복원 및 보수공사가 서둘러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유장한 현대사 100년과 주요 사건을 다루는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경제성장, IMF(국제통화기금)와 신자유주의 등 시대별로 큰 흐름이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세상만 바뀌어 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제가 98학번인데 대학에 진학할 때 많은 변화를 느꼈다. IMF 직후여서 대학 분위기가 굉장히 실용적으로 변했다고 선배들이 말하더라. 분위기가 좀 살벌하달까. 살아남아야 하는 젊은 시절을 겪었는데, 이때 경쟁이 더 치열해진 십대들은 어떻게 겪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십대 주인공들을 그렸다. 독자들이 시대 흐름과 사건에 마음을 이입해서 개인의 역사를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편답게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역사소설을 쓴다고 하면, 어떤 역사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보지만,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의 일상을 생각하면 조금 느낌이 달라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두자 같은 인물은 해방 정국에서 어차피 약자인 여자에겐 상황이 똑같아, 라고 이야기한다. 시대 상황에 대해 각자 자신들의 생각이 있고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들의 삶을 발굴해내게 된다.(주인공 영두는 작가의 페르소나 같은 분위기인데) 영두는 어떤 시기의 상처를 되게 크게 앓은 사람으로,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씩씩하게 걸어 나오는 강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건물에 대해 생각하거나 조사했던 경험 등이 조금 들어가 있다.”

―실제 역사 인물도 있을 텐데.

“후쿠다는 실제 인물 후쿠바 하야토의 회고록 루트를 많이 따라간 인물이고, ‘고무장화’라고 부르는 박창출 사육사 역시 마지막까지 동물을 굶겨죽지 않도록 돌본 어느 사육사에서 가져온 면이 있다. 회고록을 보면, 후쿠바라는 인물은 자신을 막 드러내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국비 장학생으로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미국인이 일본인 노동자들을 모욕적으로 대한 것을 다룬 글을 남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식민주의에 대한 후쿠바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국주의 첨병으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반성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인물로 그릴지 선택해야 했는데, 그가 반성적 사고를 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특히 공을 들인 문제적 인물이나 소개하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악인을 별로 그리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확실한 악인이라고 할 수 있는 마사시 이창충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물씬 발휘해 욕망하는 것들을 모두 가지려고 하다가 소녀 마리코에게 복수를 당한다. 그의 행로가 지금 한국적 상황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모델이 없는 가공의 인물이다. 이 사람을 그릴 때는 되게 힘을 줘서, 마치 이 사람과 대적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마리코가 지하 공간에서 그와 대적하는 장면을 그릴 때에는 속이 후련했다. 이 장면으로 가기 위해 참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역사 청산이라는 것이 계산기를 두드려 가능한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도, 그럼에도 계속해 말하고 새로운 기억으로 바로잡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가.

“삶을 산다는 것은 과거를 쌓는 일이고, 과거를 쌓는 일은 기억하는 것이며, 결국 그 기억이 전부이고, 그 기억을 통해서 앞을, 미래를 조정해 나가게 된다. 어떤 순간은 나쁘게 끝났기 때문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나쁜 기억이라 할지라도 건져 올려서 뭔가를 더 두텁게 해야 할 자아가 있다는 사실, 그런 사실을 한 번쯤 더 기억하면 나쁜 일의 무게도 좀 덜할 것이고 지금 당장 나쁜 일을 어떻게 처리를 하겠다는 급한 마음을 좀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을 썼다.”

―이번 작품은 작가 개인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제가 그 동안 내면을 탐구하는 소설을 주로 써왔는데, 이번 작품은 가장 긴 시간대이고, 사건의 진행도 가장 긴박하고 빨랐던 것 같다. (역사만이 아니라 현재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더 잘 나간 것 같다) 현재적 인물을 꼭 넣어야 하는 것 같다. 독자들이 감정 이입도 좀 많이 되는 것 같고. 과거의 이야기에 있다가도, 하숙집 이야기를 했을 때는 저도 뭔가 신이 났다.”

어린 시절 집에서 거의 홀로 지내던 소녀 금희는 책을 반복해 읽곤 했다. 맞벌이를 하시는 어머니는 대신 『세계동화전집』을 비롯해 전집류 책을 사주셨다. 독서가 너무 좋았기에 어머니가 사준 책들을 몇 번이나 반복해 읽었다. 학교 도서관도 동네 도서관도 변변치 않던 초등학교 4, 5학년 시절이었다.

“누구도 저에게 책을 권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도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재미있어서 책을 반복해 읽었지요. 심지어 밥 먹을 때도 책을 읽으며 먹는 아이였어요. 식사 예절이 좋진 않았죠. 반찬 국물 같은 것이 책에 떨어졌으니까요.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었고요. 책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특히 희곡까지 거의 50권 가까이 되는 동화작가 이원수의 전집이 결정적이었다. 한국전쟁으로 미쳐버린 어머니를 둔 아이, 가난으로 고통 받는 아이, 삶의 고비마다 현대사의 슬픔과 비극을 넘지 못한 인간 군상들⋯. 어두운 분위기의 사실주의적 작품 경향이 강한 이원수의 작품을 반복해 읽으며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 너머의 부조리한 세계의 일단을 보게 됐다. 자신에게 작가적인 무언가가 있었다면 아마 책과 독서를 좋아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그는 회고했다.

“세상에 가난이라는 큰 문제가 있고, 그걸 겪는 아이들이 있으며⋯. 감정 이입도 잘 하고, 큰 감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것이 저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각을 좀 많이 하게 만들지 않았나, 걱정이 좀 많게 만들지 않았나, 하고요.”

글쓰기 역시 좋아했다. 각종 글짓기 대회에 자주 나갔고, 여러 차례 상도 받았다. 상을 받아오면 부모는 좋아하며 상장을 벽에 걸어주었다. 주위의 축하와 격려 속에 그의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쓰고 싶다고. 작가가 되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인지 몰랐지만,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꿈은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글 쓰고 싶어서, 글 쓰는 것을 배우고 싶어 대학을 빨리 가고 싶었으니까요. 글쓰기가 좋아서 대학 진학을 손꼽아 기다렸던 아이였어요.”

김금희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책을 계속 읽었다. 매일 학업이 끝나면 책 대여점에 들려서 전날 빌린 책을 반납하고 다시 책을 빌리곤 했다. 책 대여점을 통해서 로맨스와 과학소설(SF)은 물론 당시 인기를 끌던 책들을 읽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 양귀자의 『모순』⋯.

문예창작과가 아닌 국문과에 진학했다. 당초 생각했던 것과 달리 소설쓰기를 배우는 곳이 아니었다. 대신 문학동아리에 가입해 소설 습작을 시작했다. 대학 4년 내내 문학회 활동을 했다. 이 시기 그는 근원적인 질문을 많이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출판사에 입사해 편집자로 일했다. 일도 어려웠지만 야근이 너무 많았다. 습작을 쓸 수 없었다. 등단도 못하고 인생이 가는 게 아닐까. 어느 순간 절박감이 밀려들었다. 6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배수진을 친 뒤 습작에 몰두했다.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나서 인천에서 자란 김금희는 2009년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후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크리스마스 타일』 등을 발표했고,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등을 출간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현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세계를 독자에게 소개한다면.

“일상에서 이야기를 건져 올리는 스타일이다. 하루를 사는 것, 일상이 가진 위대함을 알고 있기에 일상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통해서 ‘대단한 당신’을 조명하는 작가로 계속 살고 싶다. 예를 들어 장편 『경애의 마음』처럼 화려한 삶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좀 못 나간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힘을 합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사랑을 많이 다룬다는 평도 있더라) 사랑은 자주 다루는 감정의 일부로, 제가 공들이는 것은 감정이나 마음이다. 인물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독자들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떻게 잘 전달할까가 늘 핵심 포인트가 된다.”

―소설쓰기의 어떤 주요한 원칙이나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객관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혹시 내가 지나치게 투영되지 않았나, 어떤 인물을 함부로 몰아붙이진 않았나, 한 인물을 총체적으로 조명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 혹시 불필요한 미문을 쓰고 있지는 않나. 이런 것을 기준으로 퇴고한다. 예를 들면 고생해 몇몇 문장을 쓰기도 하지만, 나중에 퇴고할 때 탁 걸릴 때가 있다. 공력을 쏟은 문장이지만, 이것은 어떤 쓰기의 열정―나도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다―이 가져온 불필요한 부분이야, 하면서 지우는 편이다.”

―앞으로 어떤 작가로,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개인적으로는 글 자체를 다양하게 잘 쓰고 싶다. 시를 쓰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도 잘 쓰고 싶고, 능력이 된다면 산문도 잘 쓰고 싶다. 예를 들면 박완서 선생 같은 길을 가고 싶다. 대중의 마음에 닿는 에세이를 썼고, 굉장한 소설을 남겼다. 소설도 꽁트, 단편, 장편 등 두루 남겼다. 독자들이 글을 읽고 나서 느꼈어, 이런 반응이 있었으면 좋겠다.”

오전 8시에 일어나서 화분에 물부터 주는 그는,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카페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급한 원고가 있으면 오후에도 카페로 가서 글을 쓰지만, 평소에는 귀가해 쉬거나 책을 읽는다.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고, 취침 전엔 가톨릭 서적을 읽으며, 일주일에 두 번 요가를 하고, 일요일에 가끔씩 최근 배운 마작을 즐긴다.

일견 물처럼 흐르는 것 같은 생활의 중심에는, 늘 책 읽기와 글쓰기가 자리한다. 그리하여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작가 김금희는 비범한 이야기를 뽑아내고, 마침내 상상의 세계에서 인물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다. 다른 시간이 세상에 흐르고 있다는 마리코 할머니도, 그 마리코 할머니의 말뜻을 나중에 이해하게 되는 영두도⋯.

“‘아니란다, 영두야. 그건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들이 언제나 흐르고 있다는 얘기지.’ 할머니는 딩 아주머니네를 다녀오던 어느 날처럼 나를 말간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돌릴 수 있다는 듯이. 그때는 할머니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이제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세상 어딘가에는 지금이 아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403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허정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