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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립” 외쳤던 군…45년 만에 정치적 폭풍 휩싸였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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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2-05 11:03:08 수정 : 2024-12-05 13: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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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위(상부)에 지침 받아서 그런 겁니다.”

 

지난 3일 밤 11시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용산 국방부 청사로 달려간 기자는 출입을 저지하는 병사들과 맞닥뜨렸다. 기자실 입장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병사들에게 계속 항의하자 기자 앞을 가로막은 병사는 난감하다는 듯 이같이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엄령. 1979년 10.26 사태 이후 45년 만에 벌어진 초유의 사태는 연말 정국을 거대한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정국 운용 동력을 상실한 윤 대통령은 탄핵에 직면했고, 국민적 분노는 커져가고 있다.

 

군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며 국토방위에 전념하던 군은 비상계엄 사태로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시대의 변화, 한국군의 변화를 읽지 못한 일부 수뇌부가 한국군 최정예부대를 뿌리째 흔들고 군 조직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최소한의 현실 인식도 없나

 

국회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는 대규모 유혈충돌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군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으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평가다. 군 소식통은 “국회에 투입된 특전사 등은 위험한 상황이 매우 많았는데,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대응하지 않았다”며 “총을 뺏기지 않고 유혈사태 없이 철수한 게 다행”이라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으로 군 병력이 진입해 본회의장으로 향하자 보좌진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가로막고 있다. 뉴시스

비상계엄 사태에서도 군은 표면적으론 잠잠한 모양새다.

 

한국군의 다수를 차지하는 초급 장교와 부사관, 병사 사이에는 군의 정치적 중립의지와 개념이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Z세대(1995~2010년생)다. 풍부한 교육과 소셜네트워크(SNS) 등을 활용한 교류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 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고 정치·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다. 주체적인 측면이 두드러지는 셈이다.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의 움직임도 이와 무관치 않은 셈이다. ‘국민의 군대’라는 인식이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문제는 그 윗선이다. 한국군의 다수를 차지하는 청년들의 특성과 한국군의 현 상황을 이해했다면, 이렇게 어설픈 비상계엄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30여년 동안 훈련조차 안했던 계엄 국면에서 병력을 운용하려면 모든 계급 구성원이 오랜 기간 준비하며 손발을 맞추며 합의점을 얻고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계엄을 주도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등이 이같은 부분을 신경 쓴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비상계엄과 관련해 명령을 받은 부대는 특전사 외에도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체 병력 중 극히 일부였다.

 

오히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계엄령이냐”는 반발과 거부감이 일선 부대에서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4일 새벽 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대 구성원과 수준에 대한 이해 부족, 명령만 내리면 모두가 따르고 다 될거라는 과도한 자신감, 40여년 전의 역사적 유물인 계엄을 다시 앞세운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낳은 결과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군인들이 임무 수행에 대한 법적 범위나 책임 소재, 위기대응절차 등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군인의 덕목은 옛말이다. 헌법재판소 판례(1995헌바5 결정)는 위헌적인 명령이나 법령의 적용이 공무원에게 직무상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이러한 명령을 따르면 형사책임이 부과될 수 있음을 명시한 바 있다.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국회는 계엄령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 이를 방해하는 것은 위법행위다. 하지만 지난 4일 새벽 국회의 계엄해제요구안 처리를 앞두고 계엄군이 국회 경내로 진입했다.

 

위헌·위법한 명령이 집행될 때까지 이의 제기가 없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5일 물러난 김 전 장관과 더불어 지난 3일 밤 국회 기능을 중지하는 포고령을 내린 박 총장, 지난 4일 새벽 국회의 계엄해제요구안 처리를 앞두고 병력을 투입한 곽종근 특전사령관과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 고위 지휘관의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수십년간 복무한 고위 장성이나 국가 지도자가 합법적으로 보장된 자신의 행동과 임무 범위, 책임 소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이번 사태처럼 심각한 형태로 드러난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진입하고 있다. 뉴시스

일각에선 장병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몇몇 고위 지휘관을 제외하면 대다수 군인은 우리의 이웃이자 형제이자 친구다.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유사시 임무와 역할, 그에 따른 법적 문제와 책임 소재, 군법의 적용 방식 등을 미리 알 수 있도록 장병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정신교육 위주인 정훈 교육을 이같은 방식으로 대체한다면, 위법적 지시를 맹목적으로 이행하는 행위는 사라진다. 군 내 민주화를 촉진하는 효과도 있다.

 

‘명령을 따른다’는 이유만으로 독일을 패망의 늪에 빠뜨린 나치 독일군의 전철을 피하는 셈이다. 위기대응 과정에서 적용할 절차를 익히는 효과도 있으며 컨트롤타워 기능도 강화할 수 있다.

 

◆尹 탄핵 시 후폭풍, 감당할 수 있나

 

한편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 190명과 무소속 김종민 의원을 포함한 191명이 발의에 참여한 윤 대통령 탄핵안은 5일 0시 48분쯤 본회의에 보고됐다. 가결되면 윤 대통령의 직무는 즉시 정지된다.

 

탄핵이 현실이 되면 군 당국은 후폭풍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는 정치적 중립 대신 정치의 소재가 되는 경향을 드러냈다. 육군사관학교에 있던 홍범도 흉상을 이전하는 문제는 단순한 흉상 문제를 넘어서서 좌우 이념과 정치적 문제로 번지면서 군의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부로 계엄군이 진입하자 보좌진들과 충돌하고 있다. 뉴시스

채 상병 순직 사고는 국회 국정조사와 공수처 수사 등이 엮이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홍범도 흉상, 채 상병 순직에 더해 계엄령 사태가 벌어진 상황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까지 이뤄지면 군은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특히 채 상병 순직 사건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군 검찰은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채 상병 사건을 수사했던 박정훈 해병대 대령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할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같은 구형을 놓고 야권 등에선 반발이 상당했다. 그런데 채 상병 사건을 다시 살펴보게 되면,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에 대한 것도 재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현 정부 국방분야에서 큰 파장을 낳았던 사건인 만큼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또다른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비상계엄 사태는 군의 정치화가 극단적 형태로 드러난 사례다. 윤 대통령은 “야당에 경고만 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야권의 잇따른 탄핵과 예산안 삭감 등은 정치적 사안이다.

 

정치적 공세로 수세에 몰리면 정치적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연정을 제안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군대를 앞세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계엄을 준비하는 과정과 더불어 국회 경내로 병력을 투입하는 과정 등을 들여다보게 되면 그 파장은 클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전격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탑승한 헬기가 서울 여의도 국회로 진입하고 있다. 뉴스1

김 전 장관에 대한 부분도 주목된다. 김 전 장관은 취임한 지 3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비상계엄을 건의하는 유례없는 사태를 일으켰다. 야권의 계엄령 의혹을 거듭 부인한 상태에서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국방부장관으로서 군의 안정을 더욱 튼튼히 해서 안보태세를 강화하는 것이 장관의 본분인데,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국격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같은 문제를 만들어 놓은 김 전 장관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의를 표명하고 국방부를 떠났다. 그래놓고도 한 언론의 질의에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이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부승찬 의원은 그를 가리켜 “런종섭 2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10.26 사태 이후 처음으로 발령된 비상계엄은 매우 짧은 시간에 끝났지만, 그 충격파는 크다. 한국군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정치적 중립을 우리 사회와 군이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Z세대 장병의 특성을 고위 장성들이 잘 이해해야 한다. 군인들이 자신들의 임무에 대한 법적 책임 등을 확실하게 인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훈교육 체계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부작용은 국회에 진입했던 젊은 장병들과 같은 신분의 청년들이 떠안아야 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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