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발생한 ‘평양 무인기’ 사건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와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기획으로 벌어진 것이라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우리 정부가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이 되는 것은 물론, 남북관계를 특수관계 하 동족이 아니라 별개 두 국가로 주장하고 있는 북한이 국제사법재판소로 제기할 가능성까지 나온다.
8일 더불어민주당 국방위원회 소속 박범계 의원과 이상협 국방전문위원에 따르면 한국의 무인기가 평양 상공으로 보내진 것이 맞다는 군 내부 관계자들의 확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대북 위기감을 고조시키려는 목적으로 김 전 장관이 기획했다는 내부자 제보를 여럿 확인했다는 것이다. 또 북한에서 쓰레기 풍선이 내려왔을 때 김 전 장관이 사격을 지시했는데 김명수 합참의장이 따르지 않은 것이라고도 했다. 박 의원은 언론인터뷰에서 “합참에 가서 왜 사격을 하지 않느냐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고 했다. 이 전문위원도 “김 전 장관이 여인형 방첩사령관 임명때 측근을 기획관리실장으로 보내 게엄 기획 과정을 돕게 했고 이후 자신의 보좌관으로 임명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같은 당 이기헌 의원은 김 전 장관이 지시한 사격이 북한 쓰레기풍선이 날아온 ‘원점 타격’지시였다고 더 구체적 제보를 공개했다. 그는 “쓰레기 풍선이 오면 경고사격후 원점을 타격하라”는 지시도 했다는 제보를 군 고위관계자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김 전 장관이 취임 직후부터 계엄을 시도했던 정황이 확인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전 장관 인사청문회는 9월 2일 진행됐고 국회는 청문보고서를 대통령에 송부하지 않았지만, 윤 대통령은 9월 6일 임명 재가를 강행한 바 있다. 김 전 장관이 사실상 취임하자마자 북풍을 준비, 기획, 실행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 북한에선 의미심장한 보도가 쏟아졌고 대응도 이례적이었다. 북한은 한국이 10월 3, 9, 10일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침범시켜 ‘삐라’를 살포했다고 주장하면서 고정익(날개형)무인기 사진도 공개한 바 있다. 헬기를 닮은 직승형 무인기와 달리, 비행기를 닮은 고정익 무인기는 띄울 때 활주로가 필요하다. 북한은 처음엔 민간단체가 보냈든, 정부가 보냈든, 활주로 비행 등 움직임이 크기 때문에 최소한 군 당국 묵인 하에 날아온 것이고, 자체 조사를 벌인 뒤에는 대한민국 군부가 직접 보낸 게 확실함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10월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는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며 “현명한 정치가라면 국가와 인민의 안전을 놓고 무모한 객기를 부릴 것이 아니라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상황관리 쪽으로 힘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은 어떻느냐며 윤 대통령을 향해 “뭐가 좀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는 의혹을 사기 쉽겠다”고 했다.
10월 11일엔 대남메시지 창구인 김여정 당 부부장이나 국방성이 아니라 이례적으로 외무성이 ‘중대발표’를 내놓기도 했다. 외무성은 무인기 사건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국제법은 해당 나라의 영공에서 다른나라의 항공기나 비행물체들의 자유비행은 물론 무해비행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남북간 군사적 긴장 행동 관련 과거와 달리 국가간 국제법 위반 문제로 삼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듯한 대목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과거엔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인 동족으로서 정전협정위반 문제를 일일이 문제시하지 않으면서 관리해온 측면이 있었지만, 두 국가를 선언한 이상 타국 침해 문제 규정하고 국제사법재판소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후에도 북한은 수차 입장문을 발표하고 재발방지를 요구하다, 더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이 미국이 나서라는 메시를 낸 바 있다. 김여정 당 부부장은 14일 “평양 무인기 사건은 대한민국 군부 쓰레기들 것”이라며 “똥개(대한민국)을 길러낸 주인(미국)이 책임지라”고 신경질적 입장을 발표했다.
정전협정 위반은 접경지 주민 삶에 불안을 주는 것은 물론, 휴전 이래 수차 정전협정을 위반해온 북한과 다름없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국가위신이 걸려있다. 위반이 반복, 누적되면 정전협정의 모범적 유지를 강조하는 유엔사나 미군에게 한국 군사 당국이 소통이 잘 되지 않고 혼자 돌발행동을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행동이다. 북풍 유도라는 측면에서는 국가안보와 군의 대비태세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김동엽 교수는 “제대로된 대북 위협 판단→대비→실행이 정확하게 이어져야 하는데 ‘양치기 소년’처럼 판단 단계에서부터 계속 잘못된 판단을 주면 안보피로감이 생겨 위험하다”고 했다. 이어 “군인들이 쉬어야할 때 쉬지 못하고 전쟁이 났을 때 피로감이 누적되는 상황, 실제 움직여야 할 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합참은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합참은 ‘원점을 타격하라’는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시든 토의든 다양한 상황을 논의한다“는 군 내부 제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검토된 것은 사실’이라고 해석되고 있는 데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