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금지된 카페가 등장했다. 말을 나누지 못하는 카페다. 함께한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소라는 기존의 카페 이미지에 대한 전복이다. 주문은 글씨로 적어서 주인장에게 건네야 한다. ‘차분해요’ ‘아늑해요’ ‘이색적이라 찾았는데 의외로 시간이 금방 지나갔어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나쯤 있었으면 한 은신처 같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 ‘오로지 나만 집중하고 싶어서’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등 이용 소감은 긍정 일색이다.
그러고 보니 침묵의 세계를 찾는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30여년 전 우리나라의 3대 사찰인 송광사, 통도사, 해인사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시작한 스님의 수행 생활을 흉내 내는 ‘출가 3박4일’과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참여하기 위해서는 높은 경쟁률과 절절한 지원 이유서를 적어내야 했다. 참선, 강의, 보행, 발우공양, 취침이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묵언’(침묵)의 통솔을 받았다. 출가(?)의 마지막 날 전야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삼천배나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가는 삼보일배도 말없이 진행되었다. 침묵에 대한 반칙과 실수도 잦았다. 신기한 것은 묵언과 침묵이 커질수록 다른 소리가 크게 들리는 거였다. 생명을 지탱하는 들숨과 날숨의 숨소리, 몸을 뒤척이는 소리, 발가락과 표정을 바꾸는 소리가 선명해졌다. 잘 들려오지 않던, 듣지 못하던 소리였다.
사람의 ‘말’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침묵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대변하는 도구적 목적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이다(‘Topoi and rhetorical competence’, Clark & Delia).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 및 발전시키는 데 목적을 두는 ‘대인관계 목적’이나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 관리’에 목적을 두는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아니다.
‘침묵 카페’가 시대 변화의 새로운 현상으로 자리 잡을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침묵 카페를 이용한 소감이 일러주듯 간섭받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현대인의 바람을 반영하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타인을 의식하며 겉으로 드러내고 떠들썩한 것보다는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자신을 의식하며 속으로 조용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발견하려는 도모일 것이다. 또한 외향적인 행위에 밀려나 평가 절하된 내향적인 커뮤니케이션 행위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 재평가일 수도 있다.
사실에 대한 왜곡과 거짓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침묵을 통해 자신과 ‘마음의 소리’를 주고받는(‘intrapersonal communication’) 시간은 많을수록 좋을 것 같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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