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뛰다’라는 뜻의 ‘도량발호’(跳梁跋扈)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혔다.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108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의 사자성어 1위로 도량발호(41.4%)가 선정됐다. 도량발호는 단일 사자성어가 아닌 ‘도량’(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뛰어 다님)과 ‘발호’(권력이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뜀)로 각각 달리 활용하던 고어를 붙여 만들었다. 도량은 ‘한서(漢書)’의 ‘소요유(逍遙遊)’편 등 고전에서 방자하게 날뛰는 행동을 표현하는 데 쓰였고, 발호는 ‘후한서(後漢書)’에서 ‘발호장군(跋扈將軍)’으로 등장한다.
도량발호를 추천한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악의 사례가 지난 3일 심야 비상계엄령”이라며 “국민을 겁박하는 이런 무도한 발상과 야만적 행위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섬뜩하고 참담하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이어 “권력을 위임한 국민이 그 권력을 다시 회수하기 전에, 비뚤어진 권력자는 권력의 취기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질타했다. 교수들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국정농단, 정부·기관장의 권력 남용, 검찰 독재, 굴욕적인 외교, 경제 몰이해, 명태균·도술인 등 사인에 의한 나라의 분열 등을 선정 이유로 들었다.
올해의 사자성어 2∼5위에 비친 한국 사회는 암울하다. 2위에는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후안무치(厚顔無恥), 3위는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석서위려(碩鼠危旅)가 올랐다. 4, 5위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본이 서야 길이 생긴다’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이었다. 무능하고 염치도 없는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 혼란을 키운다는 경고나 다름없다.
그간 발표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우리 사회가 처한 어두운 현실을 조명하는 동시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2021년에는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는 묘서동처(猫鼠同處), 2022년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과이불개(過而不改), 지난해에는 ‘이로움을 보느라 의로움을 잊었다’는 견리망의(見利忘義)였다. 내년엔 더 부정적인 사자성어가 등장하지 않을까 벌써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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