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탄핵 와중에도 변동 미미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 등 효과
글로벌 통상 악화·내수 침체 등
경제 불확실성 악영향 우려 커
민·관, 환경변화 대응 적극 모색
‘12·3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지난 열흘여 동안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주식이 급락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지만 한국 경제의 위험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인 한국 외평채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흔들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글로벌 통상 여건이 악화하고 있고, 내수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실물경제까지 여파가 이어질 것이란 불안은 여전히 팽배하다. 경제계는 정부와 국회가 합심해 민생 안정에 힘써달라고 연일 요청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4일 CDS 프리미엄은 전날 34.61보다 1.1bp(1bp=0.01%) 정도 오르는 데 그쳤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1차 부결된 뒤인 9일에도 36.75로 상승폭은 크지 않았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국가가 기업이 부도가 났을 때 대비해 부도 위험만 분리한 상품이다. CDS 프리미엄이란 CDS의 위험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상승 시 국가 부도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고 투자자들이 판단한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이 비상계엄 선포·해제 직후 환매조건부증권(RP) 14조원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당국이 시장 안정화 조치에 즉각 나선 데 상당수의 글로벌 투자자들이 신뢰를 보내거나 관망하고 있는 게 CDS 프리미엄 급상승을 억제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 긴급 현안 질의에서 “외환위기 걱정은 과도하다”며 “우리는 채권국으로 현재 외환시장 상황을 보면 환율이 올라갔을 뿐이지 차입하거나 작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원·달러 환율 수준에 대해서는 “더는 정치적인 프로세스에 충격이 없을 경우 경제정책이 정상 작동하면 자연스럽게 내려갈 것”이라면서도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가 압력을 받고 있고, 미국 경제정책에 따라 달러 강세가 올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과거와 다른 경기 흐름은 불안 요소다. 한은은 지난 15일 보고서에서 “과거 탄핵 국면에는 중국의 고성장(2004년), 반도체 경기 호조(2016년) 등 우호적인 대외여건이 수출 개선을 통해 성장세를 뒷받침했지만 이번에는 통상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주력 산업의 글로벌 경쟁 심화 등으로 대외여건의 어려움이 커진 상황”이라고 짚었다.
한국신용평가는 “직간접 금융시장 어느 한 곳에서라도 중대한 ‘신용 위험(Credit Event)’이 발생한다면 하강국면에 있는 경제환경과 취약한 투자자 심리가 결합돼 자본시장에 상당한 위험(트리거)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단체들도 우려를 표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국내외 경제 상황이 엄중한 만큼 조속한 민생 안정 입법에 힘써달라고 요청했다. 기업의 경영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법안은 신중하게 임해달라고도 했다.
최 회장은 “최근 상황을 보면 대외 국가신용등급이 안정적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지적했다.
손 회장은 “반도체 산업 등 보조금 지원과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 경제 살리기 입법에 적극 나서달라”며 “기업에 부담되는 상법 개정이나 법정 정년 연장 등은 더 신중히 검토해달라”고 거들었다.
이날 대한상의 등 경제 6단체는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국회증언법) 개정안에 대해 기업의 핵심기술 유출 우려 등이 있다며 재검토를 요청하는 공동 성명도 냈다.
주요 경제단체와 반도체 등 각 업계 협회 관계자들은 이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주재한 ‘민·관 합동 실물경제 비상 전략회의’에도 참석해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미국 신정부 출범 등 최근 급변한 국내외 환경에 대응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례적으로 안 장관을 비롯한 박성택 1차관, 최남호 2차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등 산업부 서열 1∼4위가 모두 참석했다. 안 장관은 “업계와 혼연일체가 되어 어려운 시국을 타파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며 “우려 요인과 기회 요인을 면밀히 분석해 부정적 영향은 최소화하고 상호호혜적 한·미 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국내외 환경이 엄중한 만큼 실물경제 동향을 긴밀히 모니터링하고, 기존에 추진 중인 첨단산업 육성, 공급망 강화 등 정책을 차질 없이 지속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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