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예수가 태어난 성탄절이다. 기독교인으로서는 인류를 구해주실 구세주가 오셨으니 이보다 더 기쁘고 더 의미 있는 날은 없을 것이다. 성탄절을 기독교의 축일이라고만 생각하면 이날은 단일문화적 종교행사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성탄절의 유래와 전래 과정을 살펴보면 이날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다문화적인 날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12월 25일을 예수가 태어난 날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예수가 태어난 해나 날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많은 성경 학자와 고대 역사가는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원전 4년에서 6년 사이라고 보았고, 그가 태어난 달도 3월, 4월, 5월 등으로 다양하게 제시했다. 그러던 중 제35대 교황 율리우스 1세는 350년에 예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선포했다. 그런데 이날은 기원전부터 로마, 이집트 등 이교 지역에서 태양 숭배 및 관련 신화에 따라 ‘무적의 태양신 축일’ 또는 ‘농신의 축일’로 정하고 기념해 왔다.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태양신, 농신 등 여러 신을 믿는 것, 이날을 맞아 술을 흥청망청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날을 예수가 태어난 날로 선포하고 이날을 좀 더 경건하게 보내게 하는 것이었다. 위키피디아는 이를 “기독교 교회가 로마제국의 문화에 맞게 토착화됨과 동시에 이교도 문화를 정복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기독교 교회가 로마 문화를 포용한 것인지 정복한 것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날이 기독교 문화와 이교도 문화가 만나는 다문화적인 축일이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성탄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 있다. 한국에 성탄절이 들어온 것은 19세기 말 서양인, 특히 미국인들에 의해서였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성탄절을 휴일로 정하고 기념한 것은 조선 말기의 독립신문이었다. 이 신문은 미국에서 활동한 서재필과 미국 감리교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주동하여 창간하고 발행하였기에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해방 이후 미군 군정 치하에서는 각종 관공서가 성탄절을 휴일로 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 전체의 휴일은 아니었다. 성탄절이 국가 공휴일이 된 것은 1949년이었다. 여기에는 개신교 신자였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생각해 볼 일은 부처의 탄생일이다. 이날을 법정 공휴일로 정한 것은 1975년이다. 불교가 한국에 들어온 것이 4세기이고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것이 19세기라면, 부처의 탄생일이 먼저 국가 공휴일이 되고 예수의 탄생일이 나중에 되어야 하는 게 순리일 텐데, 우리는 이런 순리를 따르지 않았다. 전통 종교의 축일을 새로운 종교의 축일보다 26년이 지나서야 정했으니 말이다. 이 또한 우리의 문화 인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처럼 성탄절의 유래나 전래 과정을 보면 우리의 성탄절 역시 생각보다는 훨씬 다문화적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성탄절은 이런 사실을 되새기며 자기 종교도 낯설게 바라보고 타인의 종교도 인정하고 존중하는 그런 날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우리의 종교를 존중하면서도 타인의 종교들도 존중해야 합니다”라고 한 간디의 말처럼 말이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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