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물가 상승 ‘악순환’…복합적인 위기에 직면
‘물가 안정’ ‘환율 관리’ 난제 해결 위한 대응 시급
#. 한 중소 제조업체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해 국내외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기업이다. 주요 원자재로는 알루미늄과 철강을 사용하며, 이 원자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환율이 1400원대로 급등하면서 원자재 비용이 급등했고, 이에 따라 공급물가지수가 상승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 업체는 최근 2개월 동안 원자재 구매 비용이 20% 이상 급등해 제조원가가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이미 침체된 내수 시장과 치열한 글로벌 경쟁 때문에 제품 가격을 쉽게 인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존 거래처와의 계약 조건 때문에 판매 단가를 유지해야 했으며, 이는 곧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환율이 1400원대로 급등하면서 국내 공급물가지수가 2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11월 생산자물가 역시 넉 달 만에 상승 전환하며, 총산출 물가지수 또한 2개월째 상승을 기록했다. 이러한 흐름은 이미 침체된 내수 시장과 맞물려 한국 경제에 더 깊은 위기의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한국 금융시장은 계엄령, 탄핵 여파와 미국발 환율 충격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증시는 이틀 연속 급락했고, 국고채 금리가 일제히 상승(국고채 가치 하락)했다. 특히 고환율로 인해 수입 물품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 안정세가 다시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PPI)는 119.02(2020=100)로 전월 대비 0.1% 상승했다. 이는 4개월 만의 상승 전환이다.
생산자물가는 생산자가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며, 보통 1~3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생산자물가는 지난 7월 0.3% 상승 이후 8월(-0.2%)부터 10월(-0.1%)까지 하락세를 보였다가 11월에 반등했다.
품목별 물가 동향을 살펴보면 우선 농축수산물은 농산물(-5.1%)과 축산물(-2.8%) 가격 하락으로 전월 대비 3.6% 하락했다.
공산품도 전월 대비 0.1% 상승했으며, 석탄·석유제품(1.6%)과 음식료품(0.3%) 가격 상승이 주요 원인이다. 산업용 전력(7.5%)과 증기(0.1%) 가격 상승으로 전월 대비 2.3% 상승했다. 금융·보험서비스(-1.0%)와 운송서비스(-0.1%)가 하락하며 전월 대비 0.1% 하락했다.
생산자물가와 수입물가지수를 결합해 산출한 11월 국내공급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6% 상승했다. 이는 10월에 이어 2개월 연속 상승세이며, 올해 4월(1.0%)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원재료(1.8%), 중간재(0.6%), 최종재(0.1%) 모두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산출 기준 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6%,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 농림수산품(-3.4%)은 하락했지만, 공산품(0.9%) 등의 상승이 이를 상쇄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매파적 금리 인하 기조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 불확실성이 이번 환율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보고 있다.
이문희 한국은행 물가통계팀장은 "11월 통관 기준의 수입물가는 환율 상승과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생산자물가보다 큰 폭으로 올랐다"며 "환율 상승이 수입물가에 반영되었고, 이는 생산자물가와 국내공급물가에 시차를 두고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고환율과 물가 상승의 악순환 속에서 한국 경제는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물가 안정과 환율 관리라는 2가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