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튼 커쇼(36)의 뒤를 이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에이스 계보를 잇는 투수가 될 것으로 보였다. 커쇼와 함께 다저스의 ‘좌우 에이스’로 원투펀치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생애 첫 자유계약선수(FA)을 얻었지만, 다저스와의 동행을 더 이상 이어나가지 못하게 됐다. 한때 메이저리그 최고의 우완 투수 중 하나로 군림했던 워커 뷸러(30) 얘기다.
MLB닷컴은 지난 24일 뷸러가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계약 규모는 1년 2105만달러(약 305억원)으로, 뷸러는 FA 재수를 택했다. 보스턴에서 부활을 증명한 뒤 다년계약을 따내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보스턴행 티켓에 사인을 하면서 뷸러는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4순위로 다저스에 입단한 이래 10년 만에 자신의 재능을 태평양 연안에서 대서양 연안으로 옮기게 됐다.
뷸러는 2015년 다저스에 입단한 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2017년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8경기 1승 9.1이닝 평균자책점 7.71로 빅리그의 맛을 잠깐 본 뷸러는 2년차인 2018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2018시즌 24경기 137.1이닝 8승5패 평균자책점 2.62로 선발투수로서의 재능을 입증했다. 9이닝 당 9개가 넘는 151탈삼진을 잡아내며 K머신으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3년차부터는 다저스 선발진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2019시즌 30경기 182.1이닝 14승4패 평균자책점 3.26 215탈삼진으로 생애 첫 두 자릿수 승수에 성공했다.
최고의 시즌은 2021시즌이었다. 33경기에서 207.2이닝을 던지며 처음으로 200이닝을 넘겼다. 16승4패 평균자책점 2.47 212탈삼진. 다승 리그 전체 공동 3위, 평균자책점은 리그 전체 3위였고, 탈삼진 10위에 오르며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 4위에 올랐다.
188cm에 84kg이라는 빅리그 투수치고는 왜소한 체형으로 부상 우려가 있었던 뷸러. 결국 부상으로 커리어가 망가졌다. 2022시즌 도중 두 번째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23시즌을 통째로 쉰 뒤 올해 돌아왔다.
부상 전 평균 95마일, 최고 101마일의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을 뿌리던 뷸러는 수술 복귀 후에도 구속 하락은 거의 없었다. 전성기였던 2021시즌 평균 95.3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뿌렸던 뷸러는 올 시즌에도 포심의 평균구속은 95마일이었다.
그러나 포심의 위력은 천양지차로 달라졌다. 2021시즌 뷸러의 포심 패스트볼의 피안타율은 0.201에 불과했지만, 올 시즌엔 0.342였다. 사실상 배팅볼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올 시즌 성적은 75.1이닝 1승6패 평균자책점 5.38에 불과했다.
그나마 포스트시즌에서는 예전의 모습을 다소 회복했다. 포스트시즌에서 4경기(3선발)에 등판해 15이닝을 소화하며 1승1패 평균자책점 3.60을 기록하며 빈약했던 다저스 선발진의 한축을 담당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2경기 1승 평균자책점 0으로 2020년 이후 4년 만의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제패에 공을 세웠다.
그럼에도 뷸러는 다저스와의 동행을 이어가지 못했다. 다저스의 내년 선발진에는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해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5년 1억8200만달러를 들여 영입한 블레이크 스넬, 야마모토 요시노부, 타일러 글래스노우, 더스틴 메이, 토니 곤솔린까지 뷸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두 번의 팔꿈치 수술을 받은 데다 올 시즌 정규시즌에서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준 뷸러에게 대형계약을 안겨줄 수는 없는 다저스였다.
과연 뷸러는 보스턴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며 FA 재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 구속 하락은 없는만큼 회전수 등에서 회복만 한다면 다시금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파워피처의 면모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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