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쟁력 및 대외신인도를 높이기 위한 회의체인 ‘국가경쟁력정책협의회’(이하 협의회)를 반기별로 개최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최근 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정부 들어 이 협의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는데, 협의회 역할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훈령이 개정된 것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향후 한국의 대외신인도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통로인 협의회 역할이 줄어드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국가경쟁력 분석 및 제고에 관한 규정’(훈령)을 일부 개정했다. 이전 규정에서 ‘협의회는 반기별로 개최한다’는 의무 조항으로 명시돼 있었는데, 기재부는 이달 16일 이 부분을 ‘협의회는 반기별로 개최할 수 있다’는 재량규정으로 바꿨다. 협의회는 기재부 1차관을 의장으로 국가경쟁력 및 국제평가지수 관련 업무를 체계적으로 지원·조정하는 역할을 하며 민간 전문가가 참여한다. 기재부는 또 2년 임기로 민간위원을 위촉하는 규정도 개정해 필요시 상정 안건에 맞는 민간 전문가를 섭외하기로 했다.
기재부는 개정 사유로 “국가경쟁력지수 발표 중단 및 발표 주기 변경시 반기별 의무개최에 어려움 발생으로 반기별 의무개최를 재량규정으로 변경하여 국가경쟁력정책협의회의 효율적인 운용을 도모”를 들었다. 협의회가 관리하는 주요 지표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 발표 지표인데, WEF 지표의 발표가 2019년 이후 중단된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게 기재부 설명이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정치적 혼란이 고환율 등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전이되는 가운데 협의회 개최 횟수를 줄이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협의회가 관리하는 지수는 IMD의 국가경쟁력지수 외에도 무디스·S&P·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가 발표하는 국가신용등급도 포함된다. 무디스와 피치는 최근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정치적 위험이 장기화할 경우 한국의 신용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대외신인도 관리를 위해 민간 전문가들로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조언을 들어야 하는 상황인데, 정부 정책 방향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IMD 평가를 보더라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올해 IMD 평가의 경우 한국은 67개국 중 20위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경제성과(14→16위)와 정부효율성(38→39위) 부문에서는 순위가 하락했다.
윤석열정부 들어 이 협의회는 단 한 차례도 개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정부에서 8차례 개최된 것과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대외신인도 대응 차원 뿐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협의회는 지속적으로 개최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허진욱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산업·인구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민간 등 관련 기관들이 모여서 인공지능(AI) 캐치업(격차 회복) 문제 등과 같은 과제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개선하는 협의체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에 대해 IMD가 민간기관이고 신뢰성이 의심되는 만큼 차분히 대응하는 게 좋다는 문제제기가 있어 개최하지 않았을 뿐 각 분야별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논의는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 대외신인도 제고를 위해서도 협의회보다 더 윗급인 부총리를 중심으로 대응방안이 마련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협의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를 안했을 뿐 역동경제 로드맵을 만들고 경제정책 파트에서 개별적으로 관계부처, 민간 위원들 모아 소규모 회의체는 계속 개최했다. 그게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면서 “정치적 혼란 상황에서 (대외신인도 제고 측면에서) 민간 위원이 참여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대신 차관급인 협의회보다 더 높여서 부총리 중심으로 섹터별로 장관급인 대외관계장관회의, 산업경쟁력장관회의를 여는 등 더 위기감을 갖고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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