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기소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대표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일부 뒤집혔다. 대법원은 이들 회사의 가습기 살균제와 옥시 등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는 전혀 별개의 상품이기에 ‘공동정범‘으로 묶어서 처벌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6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74)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65)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는 각 회사에서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등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해 98명에게 폐질환이나 천식 등을 앓게 하고 그중 12명을 사망케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 회사 임직원들을 업무상 과실치사죄의 공동정범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공동정범이란 형법에서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죄를 범한 때에는 각자를 정범으로 처벌한다’는 조항에 규정돼 있다. 법적으로 책임능력이 있는 2명 이상이 서로 공동으로 죄가 될 사실을 실현하는 경우 전원을 교사범이나 종범이 아닌 정범으로 처벌한다는 의미다. 통상 그만큼 처벌이 더 무거워진다.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은 원인이 어떤 가습기 살균제 탓인지 구체적으로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가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등과 과실범의 공모 관계라고 인정한 2심과 판단을 다르게 본 것이다. 대법원은 “(옥시 사건의) 피고인들이 제조·판매에 관여한 가습기살균제의 주원료는 PHMG 등이고, 이번 사건 살균제의 주원료는 CMIT/MIT로, 그 주원료의 성분, 체내분해성, 대사물질 등이 전혀 다르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활용하거나 응용해 개발·출시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짚었다. 이어 “어떤 제품이 개발·출시된 후 경쟁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른 대체 상품’을 독자적으로 개발·출시한 경우에는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2심 법원은 “복수의 여러 종류의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에게 건강상 피해가 발생한 경우 각 제품의 결과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를 일일이 가려내 규명하는 것이 성질상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며 “사전에 그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행위자들에게 공동의 주의의무를 부과시키는 것이 형사정책적 목적에서도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 법원의 판단대로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한다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망 등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상품의 구매·소비가 용이하게 이루어지는 현대사회에서 상품 제조·판매자들 등에 대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범위가 무한정 확장된다”고 지적했다.
파기환송 후 2심 법원에서는 피해자들의 사망 원인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 사건 피해자 중 94명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옥시레킷벤키저 등 여러 회사의 가습기 살균제를 함께 사용했다. 여러 제품을 섞어 사용한 피해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분 때문에 숨졌는지 규명할 필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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