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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법률 또 강조… “여야 합의가 민주적 정당성 마지막 둑” [韓 탄핵안 발의]

입력 : 2024-12-26 18:00:00 수정 : 2024-12-26 22: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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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배경

“헌정사에서 깨진 적 없는 관례
헌정 질서 기본 원칙 훼손 우려”

일각 “대행 입장서 최선의 선택”
“민주주의 시스템 무시” 평가도
“내란 동조” 韓 퇴진 촉구 집회 열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는 26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야당이 제시한 시한 안에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기를 거부했다. 한 권한대행은 ‘여야 간의 정치적 합의’가 선행 과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하기 전까지는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대국민담화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가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한 권한대행은 담화를 통해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한 권한대행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대국민 담화에서 “그동안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에 대해 여야 정치인은 물론 좌·우 언론인, 헌법학자, 정치학자 여러분의 말씀을 폭넓게 들으며 깊이 숙고해왔다”며 “무엇보다 무겁게 느끼는 의문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야의 합의 없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 과연 헌정 질서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가 합의안만 도출해준다면 즉각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정치권의 압박에 대한 불쾌감도 드러냈다. 한 권한대행은 “사태의 조속한 수습과 안정된 국정운영을 위해 시급히 해결돼야 할 중대한 사안 중 하나가 헌법재판관 충원이라는 데 이견을 가질 분은 거의 안 계실 것”이라면서도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데 그냥 임명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 문제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쉽게 답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 제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그간 여야 합의 없이 임명된 헌법재판관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헌법재판관 충원에 대해 여야는 불과 한 달 전까지 지금과 다른 입장을 취했고 이 순간에도 정반대로 대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은 여야 합의 없이 헌법기관 임명이라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행사하라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가는 자칫 불가피한 비상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고유권한 행사를 자제하고 안정된 국정운영에만 전념하라는 우리 헌정 질서의 또 다른 기본 원칙마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권한대행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등과 관련해 일관되게 언급해온 헌법·법률·국가의 미래라는 세 가지 판단 기준을 이날도 재차 강조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권한대행은 나라가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전념하되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불가피하게 이런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면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먼저 이뤄지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헌정사에서 단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관례”라고 말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직무 정지 당시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전 총리가 헌법재판소 결정 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고 결정 이후 임명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이처럼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을 행사하기에 앞서 여야가 합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법리 해석이 엇갈리고 분열과 갈등이 극심하지만 시간을 들여 사법적 판단을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을 때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6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권한대행의 이날 담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현시점에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입장이었을 것”이라는 의견과 “책임을 회피하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무시한 것”이라는 의견이 공존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권한대행 입장에서는 편파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여야 합의 요청이 최선이었다고 본다”며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상황을 안정시켜야 하는 입장인데 민주당이 다수결로 몰아붙여 주장하는 그대로 받아버리면 결과적으로 더 회복하기 어려운 혼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탄핵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야 합의가 먼저라고 호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이 여야 합의를 강조한 것은 헌법재판관 임명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의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당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에 유리한 헌법재판관 6인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 합의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권한대행이 여야 합의를 요청한 것도 일종의 명분 확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거부권이라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은 행사했으면서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은 행사할 수 없다는 주장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여야 합의가 안 되면 국회에서 표결하고 다수결로 결정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데 한 권한대행의 담화는 그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마저 망각한 듯한, 혹은 부정하는 발언”이라며 “원론적으로 아름답게 ‘여야 합의해달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서울 도심에서는 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에 반발하는 집회가 열렸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에서 ‘내란 연장 헌법파괴 한덕수 퇴진 긴급행동’을 열고 “명백한 거부권 행사이고 내란 수괴 윤석열의 탄핵 절차를 파기하겠다는 것이다. 내란 동조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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