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에 죄수를 활용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 왕의 책사 범여는 60명의 사형수에게 가족에 후한 보상을 약속하고 오나라 군대 앞에서 한 명씩 목숨을 끊도록 했다. 월나라군은 오나라군의 눈이 휘둥그레진 사이 몰래 기습해 적군을 궤멸시켰고 오나라 왕까지 숨졌다. 아들 부차가 절치부심해 복수에 나선다는 고사성어 ‘와신상담’에 얽힌 얘기다. 병법서 고전인 ‘오자(吳子)’도 죄수부대를 정예부대 중 하나로 추천했다고 한다.
가장 악명 높은 죄수부대는 2차 세계대전 때 소련에서 등장했다. 당시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은 1942년 8월 “인민의 적을 총살하는 데 쓸 탄약도 아깝다”며 3개 죄수중대와 이들을 감시하는 1개의 독전대를 대대 단위로 편성한 ‘슈트라프바트’를 창설했다. 병사들은 소총 1정과 최소한의 탄약만 받은 채 전장 최일선에서 돌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눈앞의 적이 무서워 어물쩍하다가는 배후에서 독전대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당시 소련의 죄수부대 병력은 약 50만명에 이르고 이 중 17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동안 뜸했던 죄수부대가 수년 전 우크라이나 전쟁에 출현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푸틴의 그림자 부대’라 불렸던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은 러시아 전역의 교도소를 돌면서 사면과 2000달러 월급을 미끼로 많은 죄수를 용병으로 모집했다. 용병들은 전쟁 초기 최전선에 투입해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런데 바그너그룹은 작년 6월 무장반란에 실패하면서 와해됐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 국방부는 직접 바그너그룹을 본떠 ‘스톰Z 부대’를 편성했다. 이 부대에는 죄수 출신뿐 아니라 복무 중 마약중독, 음주 등 규율을 위반한 군인도 포함됐고 제대로 된 훈련이나 장비 없이 최전방에 배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제 이 전쟁에 파병됐다가 사망한 북한군 병사의 충격적인 일기가 공개됐다. 그는 “제가 저지른 죄는 용서받을 수 없지만 조국은 나에게 인생의 새로운 기회를 줬다”고 적었다. 북한의 파병병력 중 상당수가 사면 혹은 감형 등을 약속받은 범죄자 출신임을 짐작게 한다. 죄수부대는 잔혹한 인권유린이 횡행하는 독재국가의 시그니처 범죄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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