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차(예대금리차)가 2년 만에 최대폭으로 벌어졌다. 가계대출 억제책으로 대출금리를 가장 먼저 올리고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예·적금 금리만 줄줄이 내리고 대출금리는 떨어뜨리지 않아서다. 특히 이달 들어 각종 가계대출 규제를 풀면서도 그동안 올려놓았던 대출 가산금리를 내린 주요 은행은 한 곳도 없었다. 세계일보는 31일 지면에서 이러한 소식을 전했다. 2600선에서 출발한 올해 코스피가 기업 실적 부진과 고물가·고금리 지속 등 각종 악재에다 연말 12·3 계엄사태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라는 직격탄까지 맞고는 200포인트 넘게 밀려 2400도 무너지며 마무리됐다는 소식도 전했다.
◆대출금리는 안 내리고 예적금 금리만 인하
30일 전국은행연합회 소비자 포털에 공시된 ‘예대금리차 비교’ 통계에 따르면 11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가계대출의 예대금리차는 1.00∼1.27%포인트로 집계됐다. 이는 정책서민금융(햇살론뱅크·햇살론15·안전망 대출 등) 상품은 제외한 수치이다.
5대 은행의 가계 예대금리차가 모두 1%포인트를 넘어선 것은 지난해 3월 이후 1년8개월 만에 처음이다. 예대금리차가 클수록 은행의 이익은 커진다. 고객 입장에서는 대출금리는 높아지고, 예·적금 금리는 낮아지는 만큼 은행의 이른바 ‘이자장사’에 대한 비판이 커진다.
5대 은행 중에는 국민과 농협의 예대금리차가 각각 1.27%포인트로 가장 컸고, 이어 하나(1.19%포인트)·우리(1.02%포인트)·신한(1.00%포인트) 순이었다.
전체 19개 국내 은행 중에서는 전북의 11월 예대금리차가 5.93%포인트로 가장 높았다. 이어 토스뱅크(2.48%포인트), 한국씨티(2.41%포인트), 카카오뱅크(2.04%포인트) 등 상위 4개 은행 모두 2%포인트를 넘었다.
이달 들어 은행권이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예·적금 금리를 본격 인하하면서 예대금리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올해 하반기와 같은 금리 인하기에는 보통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빨리 내려 예대금리차가 줄어든다. 그런데도 이례적으로 예대금리차가 벌어진 것은 은행권이 대출 가산금리를 줄줄이 올린 뒤 내리지 않은 여파로 분석된다. 지난 8월 주택담보대출 급증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를 주문하자 은행별로 서너 차례에 걸쳐 가산금리를 상향 조정해 대출금리를 총 0.7∼1.0%포인트씩 인상한 바 있다.
한은이 지난 10월, 11월 연이어 기준금리를 내렸음에도 은행들은 예·적금 금리부터 재빠르게 내렸다. 그동안 높여놓은 대출 가산금리는 건드리지 않은 채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한도 상향 △비대면 대출 제한 △모기지 보험(MCI·MCG) 적용 부활 등 다른 대출 억제책만 풀었다.
한은이 발표한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 통계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11월 신규 주담대 금리는 연 4.3%로 전월보다 0.25%포인트 올랐고, 신용대출도 0.31%포인트 뛰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참석해 “기준금리 인하를 조만간 국민이 직접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12월 들어서도 가계대출 금리는 오름세다. 지난 23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5년 주기·혼합형)는 3.49~5.89%로, 2주 전인 9일보다 금리 상·하단이 각각 0.13%포인트씩 올랐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비상계엄 사태 후 시장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어 대출금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원화 유동성이 풍부하다 보니 은행들이 굳이 금리를 올리면서 예·적금을 유치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내년 1월부터 연간 가계대출 관리 목표치가 새로 설정되는 만큼 부동산 거래가 급증하지 않는 한 은행들이 가계대출 확보를 위해 대출 가산금리를 낮추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관계자는 “올해 1분기 대환대출 플랫폼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시중은행의 대출을 빨아들이면서 대출금리 인하 경쟁이 벌어졌다”며 “당장 내년 1월은 아니어도 1분기에는 대출금리를 내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적부진에 계엄사태까지 코스피 2400선 무너지며 마감
올해 코스피가 2400선이 무너진 끝에 마무리됐다. 2600선에서 출발했으나 기업 실적 부진과 고물가·고금리 지속 등 각종 악재에다 연말 12·3 계엄사태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라는 직격탄까지 맞고는 200포인트 넘게 밀렸다.
3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일 대비 5.28포인트(0.22%) 하락한 2399.49에 마쳤다. 이날은 올해 주식 거래 마지막 날로, 내년 1월2일 오전 10시 재개장된다.
이날 코스피는 장 초반 하락 후 유입된 기관 매수세에 한때 1%대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막판 매도세가 집중되면서 결국 약보합세로 마무리됐다.
외국인이 1000억원대 순매도를 보이면서 2거래일 연속 ‘팔자’ 우위를 보였고,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중 삼성전자(-0.93%)를 비롯해 6곳이 하락으로 장을 마감했다.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여파로 인해 항공업종은 1%대 하락세를 보였는데, 특히 제주항공(-8.65%)과 모회사 AK홀딩스(-12.12%)는 폭락세를 면치 못했다.
이날 코스닥은 전일 대비 12.22포인트(1.83%) 오르며 678.19에 마감했다.
올해 국내 주식시장은 상승세가 도드라졌던 미국·일본 등 해외 주요국과 달리 부진을 거듭했다. 코스피의 올해 수익률은 -9.63%에 그쳤고, 코스닥은 무려 -21.74%를 기록했다.
금융당국이 그간 기업 ‘밸류업(가치제고)’을 통한 자본시장 선진화를 추진했지만, 올해엔 큰 성과가 나지 않은 셈이다.
금융감독원은 내년에도 자본시장 선진화 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며 3월 말 공매도 재개를 위해 통합 가이드라인, 공매도 등록번호 발급 시스템 구축 등 후속조치를 마치겠다고 이날 밝혔다.
한편 한국거래소는 내년 중 거래소가 운영하는 시장 데이터 등을 활용·가공해 만든 ‘한국물 지수’를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을 해외 거래소에 상장할 수 있게 해 글로벌 투자자의 한국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로 했다고 전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