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침팬지, 뇌·신경 구조 유사
도구 제작·사용 등 행동도 비슷
부모 양육 방식 성장에 큰 영향
타 집단 향한 적대성도 못지 않아
창문 너머로/ 제인 구달/ 이민아 옮김/ 사이언스북스/ 3만원
“한때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믿었던 인지 능력이 침팬지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 때, 침팬지도 추론할 줄 알며 감정이 있고 고통과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겸손해진다.”
제인 구달(91) 박사는 1960년 탄자니아 곰베에서 야생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다. 침팬지 무리에 개입하지 않고 따라다니며 조용히 관찰하는 방식이었다. 30년간 침팬지들의 곁을 지킨 구달은 침팬지가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구달의 이런 30년 연구를 담은 책 ‘창문 너머로’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그는 곰베에서 초기 10년간 연구 결과를 정리해 1971년 ‘인간의 그늘에서’를 집필했다. 이후 20년의 연구를 보태 1990년 ‘창문 너머로’를 내놓았다. 이번에 출간된 책에는 그 후 2009년까지 20년간 곰베의 변화상을 짤막하게 추가했다.
구달은 처음에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의 제안으로 곰베로 간다. 리키 박사는 아프리카에서 초기 인류의 화석을 발견했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은 화석으로 보존되지 않는다. 사라져버린 행동을 파악할 실마리는 침팬지였다. 리키 박사는 현생 인류와 현생 침팬지가 공통으로 하는 행동이 있다면 두 종의 공통조상이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고, 그러니 초기 인류도 마찬가지였으리라 확신했다.
침팬지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 인간과 닮았다. DNA 구조에서 둘의 차이는 1%에 불과하다. 뇌와 신경망도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연구 결과 행동 역시 유사했다. 침팬지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 애정 어린 유대를 형성하고 서로 돕고 의지하며 인내한다. 유년기의 장기 의존성, 학습의 중요성, 비언어 의사소통, 도구 제작과 사용, 사냥 과정에서 무리의 협력, 미묘한 사회적 압력 등도 인간과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구달이 묘사한 침팬지들의 생활에서는 현생 인류의 행태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구달은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곰베의 숲과 들에서 지켜본 침팬지들의 삶을 이야기보따리 헤치듯 풀어놓는다. 과학저술임에도 역사서나 이웃의 하루하루를 읽는 듯 친근하게 쓰였다. 숨질 날이 얼마 안 남은 엄마 침팬지 플로가 아들 플린트와 걸어가는 장면 묘사는 이런 식이다.
“플린트는 그런 어미를 답답해하면서 앞장서 갔고 빨리 따라오지 못한다고 칭얼댔다. 가끔은 입이 쭉 나온 부루퉁한 얼굴로 어미를 밀어 억지로 움직이게 했다. 더 쉬겠다고 버티면 그대로 내버려 두는 법 없이 손을 끌어당겨 털 고르기를 해달라고 끈질기게 졸랐고, 그래도 거부하면 토라져서 울음을 터뜨렸다.”
5장 ‘피건의 부상’편은 권력 암투를 담은 중편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이례적 지능을 타고난 피건은 서열의 사다리를 오르려는 의지가 강했다. 그가 우두머리 수컷 자리를 쟁취하기까지 강한 수컷 앞에서 몸을 낮추고 미래의 경쟁자를 견제하며 때를 노리다 반격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일을 도모할 때 내 편을 얻는 것의 중요성은 침팬지나 인간이나 다르지 않았다. 구달은 “침팬지의 권력다툼에 대해 알아 갈수록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깨닫는다”며 “무리 최상위에 오르고자 하는 성체 수컷이라면 동맹이 있는 경우 성공 확률이 크게 상승한다. (…) 내 적수와 편을 먹지 않을 친구이자 내 편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인간처럼 침팬지도 부모의 됨됨이와 양육 방식이 중요하다. 다정다감하고 포용력 있는 엄마를 둔 피피, 차갑고 무뚝뚝하고 참을성 없는 엄마를 가진 폼은 전혀 다른 생을 살게 된다. 피피의 생애는 밝고 순조롭다. 무리 내에서 가장 높은 서열과 권위를 누리는 암컷이 됐고 번식도 자기 공동체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반면 폼은 어릴 때 우울하고 불안했으며 어미가 돼서도 양육 능력에 구멍이 생겼다.
구달은 곰베연구센터에서 연구자·학생들과 30년간 침팬지를 연구하며 초기 10년 동안에는 보지 못한 습성도 목격한다. 타 공동체에 대한 공격성과 동족 포식이다. 1974년부터 곰베 침팬지 사이에는 ‘4년 전쟁’이 벌어진다. 구달이 속속들이 아는 침팬지들이 속한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를 잔혹하게 공격했다. 상대의 다리를 붙잡은 뒤 땅에 내리치고 때리고 물어뜯었다.
침팬지의 본성에도 어두운 일면이 있었다. 이를 깨달은 구달은 속이 쓰라렸고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침팬지의 적개심은 인간처럼 ‘우리’가 아닌 ‘타 집단’을 향했다. 구달은 침팬지가 타 집단에 보이는 극도의 적대성과 폭력성이 인류의 잔인성과 막상막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인간은 선과 악 모두에서 침팬지보다 한 발 더 나간다. 인간만이 고문을 행한다. 동시에 인간은 고차원의 사랑에 도달하고, 대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
“우리의 ‘악함’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침팬지)이 행할 수 있는 최악의 악보다도 헤아릴 수 없이 더 악하지만, 우리의 ‘선함’이 견줄 수 없이 더 선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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