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집 철거’ 놓고 법적분쟁
“쓰레기 파헤쳐 악취… 차량도 파손”
일부 주민 캣맘 돌봄 민원 제기
혐오로 학대… 처벌은 가벼워 논란
지자체 양측 민원 사이 고심
급식소 설치 등 관리대책 내놔도
“동네 미관 훼손” 반대 목소리 커
일각 “중성화수술로 개체 줄여야”
마리당 19만원 “예산낭비” 반론도
길고양이 100만마리 시대다. 길고양이 개체 수가 많아진 만큼 주민 반응도 크게 엇갈린다. ‘공생의 존재’로 보호해야 한다는 측과 소음과 도시미관 저해 등의 문제로 ‘골칫거리’로 바라보는 측이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보살피는 이른바 ‘캣맘’, ‘캣대디’가 있는가 하면 길고양이를 잔혹하게 학대하는 사건은 하루가 멀다고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길고양이 관리 주체인 지방자치단체는 잇따르는 민원에 저마다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길고양이에 관해 수용이냐 방목이냐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현재진행형’이다.
◆길고양이 갈등, 고소·재판으로 비화
길고양이 갈등은 결국 사람 간의 고소전으로 번지고 있다. 9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울산 동구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캣맘에게 재물손괴죄로 고소를 당했다. 자신이 설치한 고양이 집을 철거했다는 이유에서다. 울산 남구의 아파트에서는 관리소장이 캣맘이 화단에 숨겨 놓은 밥그릇을 처분해 사과를 강요받았다. 관리소장은 “민원이 들어와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캣맘이 재물손괴죄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결국 사과했다.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나뉜다. 보호 입장은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에 보살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경북 안동의 김미희(42)씨는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고작 3년이고 최근 3년간 로드킬로 죽은 수는 7만마리가 넘는다”면서 “길고양이가 도시에서 찾은 먹이와 물은 몸에 좋을 리 없고 음식물 쓰레기와 오폐수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직장인 최모(30대)씨도 “길고양이도 처음부터 길고양이가 된 것은 아닐 것”이라며 “우리가 길고양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동물 중 고양이만 지원하거나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강원 춘천의 한 시민은 “길고양이가 차 보닛을 긁거나 도시 미관을 해치는 일이 허다하다”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대구 동구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박모(65)씨는 “동네가 주택가여서 밤마다 길고양이들이 몰려들어 우는 소리에 잠을 설칠 지경”이라며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찢고 파헤쳐 골목마다 악취가 진동한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길고양이 학대범죄에 대한 처벌을 놓고도 갑론을박은 이어지고 있다. 길고양이를 학대해 죽이더라도 대부분 재물손괴죄에 해당하고, 드물게 동물보호법 적용에 그치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법은 제8조에서 ‘누구든지 동물을 학대해서는 안 되며, 동물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최근 재판을 살펴보면 길고양이 학대범은 대부분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 선고에 그쳤다.
실제로 지난해 4월 길고양이를 괴롭힌 60대 남성이 재물손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 30만원을 선고받자 사회적 공분이 일기도 했다. 이 남성은 길고양이 사료에 쥐약을 넣거나 돌팔매질 등을 2년간 매일같이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학대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건 피를 흘리거나 사체로 발견되는 등의 직접적인 학대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길고양이 어쩌나” 지자체들 고민 커
길고양이는 법적으로 유기동물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구조·보호조치 대상이 아니다. 사람에 의해 길러져 온 개와 달리 영역동물로 일정 서식지에서 오랜 세월 자생해 온 동물이기 때문이다. 먹이를 주는 행위도 불법이 아니어서 제지할 방법이 없다. 현행법상 길고양이에 대한 관리나 처분은 지자체 소관이다. 따라서 지자체는 길고양이와 관련한 민원을 줄일 자구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전국 최초로 발의됐으나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한 천안시의회의 ‘길고양이 보호 조례안’은 재상정될 전망이다. 부산시의회는 2020년 ‘부산광역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공사 업체가 부산 재개발지역에서 공사하기 전 길고양이의 이주·보호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조례안에 담았다.
길고양이급식소는 2013년 서울시 강동구가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지자체가 설치·운영하거나 단체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설치를 반대하는 의견도 거세다. 급식소를 청소하지 않아 지저분하거나 방치된 사료에 벌레가 꼬이는 등 관리 부실에 따른 민원이 많다. 인천 부평구는 공원에 급식소를 설치한다고 밝히면서 주민 간 찬반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자 농림축산식품부는 2023년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길고양이 돌봄 지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길고양이 돌봄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은 올바른 길고양이 사료 급여 방법이다. 자동차 밑과 주차장, 어린이 놀이터 등 밥자리로 적절하지 않은 장소를 안내했다.
◆중성화수술 효과 놓고 갑론을박
지자체는 길고양이 개체 수 확산을 막기 위해 길고양이 중성화수술(TNR)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TNR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다. 영역동물인 길고양이를 군집별로 70% 이상 중성화해야 하고, 매년 15%를 추가로 중성화해야 개체 수 감소 효과에 볼 수 있다는 의견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에서 진행하는 중성화율은 해당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용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한 마리당 포획·수술·방사까지 약 19만원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동물 중 고양이에게만 수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건 옳지 않다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관계자는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하고 방사하는 게 인도적으로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영역별로 개체 수를 파악하고 그 주변 환경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길고양이는 폭염과 혹한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데다 전국적으로 학대 범죄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면서 “길고양이 혐오를 넘어 이해가 동반되는 성숙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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