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감축 통해 기후재난 빈도·강도 줄여야
눈앞에서 집이 타들어 가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소방관, 경찰, 군인 등 화재 진압을 위해 투입된 인력이 할 수 있는 건 겨우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일뿐이다. 마치 화산이 폭발한 듯 모든 대지는 붉은색 불길이 뒤덮고 있다. 지금 이것이 세계적인 메가시티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 상황이다.
2013년 미국 LA에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제트추진연구소에 근무했을 당시 많은 동료가 살았던 알타데나는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뿐만 아니라 내 아이와 주말마다 뛰어놀았던 푸른 공원은 회색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영화의 도시에서 정말 영화로 담기 어려울 정도의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게 기후변화의 위력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불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 그래서 기후변화는 무서운 것이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는 다른 주에 비해 산불이 자주 나는 지역이기 때문에 주정부뿐만 아니라 연방정부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는 지역이다.
실제 나사에서도 그곳의 산불 대응을 위해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불은 줄어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일처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정말 거대한 산불이 발생했다. 아직 정확한 원인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기후변화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많은 기후변화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와 같은 지중해성 기후 지역의 대기가 점점 건조해지는 경향을 보여 대형 산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다.
우리 연구실에서도 2018년 국제학술지 ‘Nature Climate Change’에 기후변화에 따른 대기의 건조화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우리가 탄소배출을 지금 당장 줄이더라도 생태계가 파괴될 수준의 건조화 피해가 나타나는 지역이 있을 것이고 정확히 남부 캘리포니아가 포함되어 있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본인의 연구 결과가 정확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예측은 사실 틀려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산불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도시 LA라서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유사한 산불이 매해 전 세계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인 2024년 10월만 해도 지중해 그리스에서 산불이 발생하여 축구장 7000개에 해당하는 면적이 타버렸다. 사실 그리스는 당해 봄, 여름, 가을 가릴 것 없이 산불이 발생하는 이변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지구의 허파라 불리며 많은 양의 탄소를 흡수하여 기후변화 완화에 이바지하는 남미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는 올해 17년 만에 가장 많은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몇 년 동안 이어진 가뭄으로 인해 열대우림의 많은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산불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특히 2022년 초 영동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많은 이의 기억에 아직 남아 있다. 울진과 삼척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거대한 산불은 많은 이의 노력에도 꺼지지 않다가 일주일 만의 비가 내려 진화를 할 수 있었다. LA, 그리스, 아마존 그리고 한국의 강원 지역 산불 모두 인간의 능력으로는 끌 수 없는 불을 경험한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해서.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산불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예견된 것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정확한 시점을 예측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결국 당장 내일이라도 지금 LA 산불과 같은 큰 재앙이 한국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확률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를 줄이는 길밖에 없다.
그래도 지금 당장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탄소 배출량 감축을 통해 산불을 포함한 많은 기후재난의 빈도와 강도를 줄여나가는 노력은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만이 유일한 답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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