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첫 만남보다 다시 만날 때 짜릿
잠시 책을 멀리한 ‘탕자’의 귀향 반가워
블랙코미디 소동극 ‘나의 첫 임종체험…’
‘죽는 경험’ 통해 삶을 다시 보게 만들어
독자들 문학과 재회하기에 ‘맞춤’ 작품
다시 소설 읽는 사람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는 텍스트힙(text hip)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부상한 ‘신입 독자들’도 있지만 한동안 소설 ‘따위’ 잊고 살다 ‘돌아온 탕자들’도 있다. 소설과의 첫 만남보다 짜릿한 것이 소설과의 두 번째 만남이라고들 한다. 소설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제작된 ‘발명품’인 바, 인생의 경력직일수록 삶의 복잡함과 비정함, 이른바 ‘말 못할 얘기’들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밝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소설 읽기의 귀로를 열어 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예심 통과작은 ‘바닥없는 구멍’, ‘우, 분투’, ‘새는 혼자 날지 않는다’, ‘내일은 어디로 갈까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나의 첫 임종체험 후기’ 여섯 편이다. ‘바닥없는 구멍’은 서울의 한 지역 교회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을 기점으로 잠복해 있던 구석진 관계들과 그 이면을 드러내는 타운소설이다.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는 화려한 출발이 몰입감을 자아냈으나 인간관계의 양면성이나 모순성 등 좀 더 치열한 전개감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내내 남았다. ‘우, 분투’는 슬럼프에 빠진 작중 소설가의 눈에 들어온 ‘핫한’ 아이템, ‘소싸움’을 관장하는 인간 세계의 분투를 그린다. 전형성을 벗어나는 캐릭터와 목적성에서 자유로운 서술이 강렬한 색채를 드러냈지만 중심에서 주변으로 확장되는 관계가 다채로움보다는 산만함을 증폭시켜 작품의 색을 흐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새는 혼자 날지 않는다’는 수심 150m 아래 잠긴 진실을 인양하고자 하는 세계를 치밀하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규모로 구현하는 작품이다. 현실감을 자아내는 데 요구되는 소설의 핍진성 측면에서 압도적인 작품이었으나 등장인물이 지닌 윤리 의식이 경험적이기보다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탓에 독자를 소설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독자의 공감과 이해는 소설의 서사와 함께 ‘빌드업’되는 과정에서 발생, 형성된다는 것을 상기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내일은 어디로 갈까요’는 보호 기간 종료 후 자립을 시작해야 하는 청년의 길 찾기를 다룬 성장소설이다. 정갈한 문체와 담백한 서사에는 익숙함이 주는 ‘힐링’ 효과가 선명했으나 볼륨감 약한 소설이 피할 수 없는 단조로움의 한계 역시 선명했다. 일상성이 소설의 미덕이 되기 위해서는 비일상성 역시 전략적으로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본심에서 치열하게 논의된 작품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와 ‘나의 첫 임종체험 후기’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의 배경은 서울 서대문구 인근의 모처, 지진 발생 이후의 어느 날들이다. 각자 홀로 살아남은 자들이 폐허에서 생존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른 장르로 펼쳐진다. 60대의 한 여성은 언뜻 속 편한 ‘자연인’처럼 살고 20대의 한 청년은 게임 속 캐릭터처럼 산다. 재난물의 주인공처럼 생존하는 건 그사이에 낀 중년 커플뿐이다. 아포칼립스와 유토피아를 오가는 이야기 특유의 현실감이 신선하고 가독성 또한 높았지만, 비약하는 시간성과 결말부 시간의 틈이 서사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독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한 화자의 경직된 태도 역시 소설의 발길을 붙잡았다.
‘나의 첫 임종체험 후기’는 한 소도시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운영되는 임종체험관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블랙코미디 소동극이다. ‘죽여 주는 데’에서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감정을 판매하는 임종체험관의 인기가 날로 높아진다. 체험판 죽음 사이에서 ‘진짜 죽음’의 흔적을 골라내야 하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삶에서 죽음을 경험하려던 시도가 역공당해 죽음 속에서 삶을 찾아내야 하는 혼돈의 체험으로 변하자 모든 게 의심스러워지고 그것은 곧 살아 있는 지옥이다. 일장춘몽을 기획했으나 악몽이 되어 버린 ‘죽음 체험관’은 피상적인 삶과 죽음에 ‘진짜’를 대입해 삶과 죽음을 다시 보게 만든다. 설정에 대한 소개와 많은 등장인물을 드러내기 위한 시점의 이동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묵직한 질문이 남았다는 데 이견은 없었다. 다시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인생의 복잡함과 난해함을 체험한 자들일 것이다. 독자들이 문학을 재회하는 현장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이 소설을 올해 세계문학상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작가에게 뜨거운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심사위원 은희경·김유진·박혜진·전성태·정유정·정홍수·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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