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그제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을 쐈다. 조선중앙통신은 “순항미사일이 1500㎞의 비행구간을 타원 및 8자형 궤도를 따라 비행해 표적을 명중 타격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는 올해 들어 세 번째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처음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공화국 무력의 전쟁 억제 수단들은 철저히 완비되어 가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을 시사하자 미사일 도발로 응수한 것이다.
북한이 순항미사일을 쏜 건 도발 후 협상에서 자신의 몸값을 올리려는 뻔한 수법이다. 순항미사일은 탄도미사일과는 달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 위반이 아니고, 담화도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아니라 외무성의 명의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떠보기 위해 수위를 조절한 정황이 역력하다. 북 외무성은 쌍매훈련 등 최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거론하며 “미국과는 철두철미 초강경으로 대응해야 하며 이것만이 미국을 상대하는 데서 최상의 선택”이라고 했다. 남측을 무시하고 미국과 직거래하겠다는 ‘통미봉남’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걱정스러운 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가 지난 30여년간 추진해온 북한 비핵화 목표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이미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하며 김정은과 대화할 뜻을 밝혔다. J D 밴스 미국 부통령도 “우리의 가장 귀중한 자원(미군)을 배치하는 방식에서 아껴야 하며 모든 곳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트럼프 측근인 프레드 플라이츠 미 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은 “북한과의 협상 재개를 위해 한·미 연합훈련 일시 중단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했다. 북·미 협상 때 주한미군 감축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 협상 카드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핵 군축과 대북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위험한 거래’가 성사된다면 우리 안보에는 커다란 재앙이다.
사정이 이리 다급한데 우리는 리더십 공백 상태에 빠져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북·미 협상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막는 게 급선무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미동맹 강화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며 양국 번영의 초석임을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도 분명히 전달·설득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비상한 외교가 절실한 때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