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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인 세월의 굳은 살 …수고(手苦)했어 오늘도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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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08 17:08:05 수정 : 2025-02-08 2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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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상인들의 겨울나기

겨울 햇살이 차가운 땅을 데웠다가 서서히 식어가기 시작하는 조금 늦은 오후, 낙타 등처럼 등이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자판을 깐다. 자루에서 갖가지 비닐봉지를 꺼내 안에 든 채소들을 꺼낸다. 쪽파, 마늘, 시금치 등등. 재래시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할머니는 시금치를 다듬기 시작한다. 채소를 다듬은 시간만큼 할머니의 손은 닳아 있다. 오른손 엄지와 왼손 검지, 중지엔 밴드가 감겨 있다. 딱딱한 손으로 칼을 잡은 채 채소를 다듬는다. 굳은살이 빼곡히 박여 있다.

 

채소 다듬는 손. 할머니는 일 년 내내 거리에서 채소를 다듬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일 년 내내 햇살 내리쬐는 거리에서 채소를 다듬다 보니 손엔 상처와 굳은살이 박였다. 일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하신다.

“80은 훌쩍 넘었어. 그냥 하는 일이라 하는 거야. 일하는 거 감사하지.” 할머니는 묵묵히 일할 뿐이다. “이거 저쪽에서 산 건데 신어요.” 이때 지나가는 할머니 한 분이 양말 두 묶음을 던진다. “이걸 내가 왜 신어요. 가져가요.” 채소를 팔던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말하지만, 지나가던 할머니는 벌써 자리에 없다. 할머니는 리어카를 끌며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인사하자 양말 하나 신으라며 건넨 뒤 다시 말이 없다. 그리고 채소를 다듬는다.

 

콩나물 담는 손. 거친 손으로 봉지에 콩나물을 담을 때는 재빠르다.
콩나물 담는 손. 거친 손으로 봉지에 콩나물을 담을 때는 재빠르다.

약 30개의 뼈로 이루어진 사람의 손은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체기관 중 하나이며 살아온 삶의 흔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부이기도 하다. 시장을 다니다 보면 상인들의 표정보다 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차가운 겨울을 나는 그네들의 손에 관심이 갔다. 세월의 굳은살이 박인 손이 자꾸 눈에 밟혔다. 힘찬 하루를 보내는 삶도 궁금했다. 얇디얇은 비닐장갑 하나만 낀 채 다 식은 국물을 입으로 가져가는 상인, 계란찜을 만들기 위해 목장갑을 끼고 연신 뜨거운 불 위를 왔다 갔다 하는 상인, 시루에서 콩나물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는 거친 손의 상인, 1000원짜리 수십 장을 연신 세고 있는 상인…. 시장에선 상인들이 수십 번, 수백 번 손을 사용하며 거친 겨울을 나고 있었다.

 

계란찜 만든 손. 두꺼운 목장갑을 끼고 연신 손을 놀린다. 밥 먹으러 온 손님들에게 줄 계란찜이라 바쁘지만 기분 좋다.
계란찜 만든 손. 두꺼운 목장갑을 끼고 연신 손을 놀린다. 밥 먹으러 온 손님들에게 줄 계란찜이라 바쁘지만 기분 좋다.
밥 먹는 손. 노상에서 밥과 국을 먹는 할머니의 한 겹 비닐장갑 안엔 습기가 방울방울 맺혀 있다.
밥 먹는 손. 노상에서 밥과 국을 먹는 할머니의 한 겹 비닐장갑 안엔 습기가 방울방울 맺혀 있다.

“30년 생선가게를 하다 사기를 당해 3년 전부턴 붕어빵을 만들고 있어. 하루에 꽤 벌어. 생활하는 데 어렵진 않아. 그냥 일할 수 있어 행복하지 뭐∼.” 1000원에 두 마리를 팔고 있는 붕어빵 할아버지가 자꾸 먹고 가라고 한다. 하나만 먹으면 정 없으니 2개는 먹어야 한다고…. 박윤섭이라고 이름을 밝힌 할아버지는 좋은 재료로 만들기 때문이 붕어빵이 인기가 있다고 한다.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 너무 무시하는 거 같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할아버지의 한마디가 가슴에 남아 있다.

 

붕어빵 만드는 손. 생선 가게에서 붕어빵 가게로 전업하게 됐지만 표정만은 행복하다.
붕어빵 만드는 손. 생선 가게에서 붕어빵 가게로 전업하게 됐지만 표정만은 행복하다.

“한 40년 이 일을 했지. 잡화라는 게 물건을 일단 구입해놓고 파는 거라 한번 발을 담그면 헤어날 수가 없어. 그냥 계속하는 거야.” 1000원짜리 한 뭉치를 연신 세던 잡화상 할아버지는 말한다. “왕십리에서 일을 했었는데, 여기로 왔지. 사람들이 많으니 더 잘될 거라 생각했는데 비슷비슷해. 이거는 경기를 타지 않아. 늘 그렇지∼. 그냥저냥 하는 거야. 일하니 좋은 거지∼.”

 

돈 세는 손. 잡화점 할아버지가 두툼한 손으로 돈을 센다. 뭉치가 커 보이지만 온통 1000원짜리라 액수가 많지는 않다.
돈 세는 손. 잡화점 할아버지가 두툼한 손으로 돈을 센다. 뭉치가 커 보이지만 온통 1000원짜리라 액수가 많지는 않다.

시장에서 수십 년의 삶은 곱디고운 그네들의 손에 세월의 지문으로 남았다. 거칠고 투박한 상처도 남았다. 그래도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이구동성. 그냥 하던 일이라 일을 계속 하고, 겨울은 또 그렇게 지나가고 다시 봄이 올 것이다. 시리던 손을 호호 불어가다 보면 겨울은 저만치 지나갈 것이다. 추웠던 겨울의 흔적이 손에 또 새겨지고 삶은 이어진다. 대단한 분들이다.


글·사진=허정호 선임기자 h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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