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법안·특위 통해 미래 부담 줄일 묘안 짜내야
국민연금의 건강상태를 점검하여 적절한 처방을 마련하기 위해 2003년 처음 도입된 재정계산이 2023년에 5번째로 시행되었다. 2023년 재정계산은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월급의 40%로 그대로 유지하고 보험료(내는 돈)를 현재 9%에서 15%로 6%포인트나 인상할지라도 재정안정 달성이 불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우리 연금이 처한 민낯이다.
2023년 1월의 국회 연금특위 자문위원 회의에서 중요한 투표가 있었다. 필자 제안의 “소득대체율 40%-보험료 15%”안과 다른 위원이 제안한 “소득대체율 50%-보험료 12%(또는 13%)”안에 대한 투표 때문이었다. 전체 15명 자문위원 중에서 10명(3분의 2)이 필자 제안의 “소득대체율 40%-보험료 15%”안을 지지했다. 전문가 집단에서는 받는 돈은 그대로 두고 내는 돈만 더 올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1년 동안 진행된 연금특위 이후에, 공론화위원회가 국회에 만들어졌다. 시민대표단에 연금을 학습시켜 연금개혁 방향을 결정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연금을 공부했다는 시민대표단 절반 이상은 “소득대체율 50%-보험료 13%”안, 즉 지금보다 연금을 25%나 더 받는 안을 선택했다. 공부했다는 시민대표단 다수는 왜 25%나 더 받는 안을 선택했을까? “소득대체율 50%-보험료 13%”안은 기금 소진 후의 보험료가 43.2%(2078년)에 달하는데도 말이다. 학습자료로 제공된 이 내용을 공론화위원회가 삭제함으로써, 시민대표단에 전달되지 않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서 일어난 대참사였다.
사회적 합의 도출이 어려울 때는 역발상이 효과적일 수 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다. “소득대체율 30%-보험료 12%”, 즉 받는 돈은 지금보다 10%포인트(25%) 줄이고, 3%포인트(33.3%)를 더 내도 2070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 그때부터는 월급의 26.5%나 국민연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뀐다. 왜 이런 황당한 결과가 예상될까?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빚을 국민연금이 지고 있어서다. 필자가 소속된 연금연구회가 ‘미적립 부채’, 즉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 대비 부족한 액수가 1825조원을 넘어섰다고 그렇게도 강조하는 이유다.
우리 상황이 이러함에도, 보험료 찔끔 올리는 조건으로 연금 더 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 우리 사회 분위기다. 그것도 ‘연금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여가면서다. 개악 중에서도 그런 개악이 없는데도 개혁이라고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월 내로 연금법을 통과시키라!”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발언 후 연금개혁안 처리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작년 5월 야당이 통 큰 양보를 했다는 “소득대체율 44%-보험료 13%”안의 실상은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을 10%나 더 올려주겠다는 뜻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2%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임에도 연금월급을 10%, 즉 경제성장률의 5배 이상 더 올리겠다는 의미다. 그 후과는 참담함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우리 손자·손녀세대의 피멍이 들게, 아니 허리가 부러지게 할 일이라서 그러하다. 그러니 소득대체율은 40%를 유지하고 보험료를 13%로 조속히 인상해야 한다고 하는 거다.
제대로 된 국민연금 재정안정법안 통과와 함께 국회 여러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특위를 출범시켜야 한다. 59세인 의무납입연령을 64세로 연장하면 소득대체율 5%포인트가 인상된다. ‘퇴직 후 재고용’ 등을 통해 가능한 정책수단이다. “소득대체율 44%-보험료 13%”안에 비해 실질 소득대체율을 1%포인트나 더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공적연금 강화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국회 환노위 등이 참여하는 특위 구성이 불가피하다고 하는 것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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