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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남성 [이지영의K컬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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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13 23:06:55 수정 : 2025-02-13 23: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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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한 회만을 남겨놓은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는 멜로드라마 역사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보여주고 있다. ‘나의 완벽한 비서’는 업계 2위 헤드헌터 여성 CEO 강지윤(한지민 분)과 남성 비서 유은호(이준혁 분)를 중심으로 한 로맨스 드라마인데, 주인공 지윤은 기존 로맨스 드라마의 능력 있는 남성 CEO처럼 일에서는 철두철미하지만 사적으로는 모든 것에 서툴며 마음속에 상처를 품고 있는 외로운 캐릭터다. 반면 은호는 꼼꼼하게 정리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따뜻하게 타인을 보살피는 능력으로 완벽한 비서, 아니 완벽한 남성 역할의 캐릭터다.

 

처음에 갈등 관계였지만 곧 이어 사랑에 빠지는 기존 멜로드라마의 관습들이 사용되고 있지만, 멜로드라마에서 늘상 나오던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남성 CEO와 수동적인 여성 부하직원이라는 남녀관계를 역전시킨 설정이 이 드라마의 흥미로운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기존에는 남성은 주로 큰일을 담당하고 여성은 그를 보조하면서 보살피는 노동을 담당했지만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는 노동의 성격 역시 기존의 성별 역할을 뒤집고 있다. 남성에게 정리정돈과 돌봄, 게다가 살림과 육아의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이런 둘이 사랑하게 되면서 다정하고 세심하게 상대를 보살피는 은호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맺음의 의미를 몰랐던 지윤은 서서히 변화된다.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이 변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현실에는 아직도 고정된 성역할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중 어떤 현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즉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가 바로 드라마 같은 매체가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첫걸음일 수 있다. 재현이란 언어나 이미지를 통해 주변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으로,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고 모방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새로운 의미들을 창출해내는 의미 생산의 역할까지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극중 은호 캐릭터는 단지 남녀 성역할의 전복으로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새로운 남성상을 창출해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공격적인 마초가 아니라 다정함, 세심함, 돌봄 등을 갖춘 남성이야말로 어쩌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긍정적인 남성성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드라마 속 캐릭터처럼 완벽한 사람은 없겠지만, 이런 새로운 가치를 지닌 남성을 긍정적으로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를 위해 필요한 남성의 모습에 대해 조금 더 윤곽을 잡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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