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업체 소속 직원처럼 활동
사무실서 타 교사들과 문항 제작
배우자 계좌로 돈 받아 추적 피해
팀 결성 ‘기업형 범죄’ 행태 보여

18일 감사원이 공개한 현직 고교 교사들의 시험문제 뒷거래 행태는 충격적이다. 사교육 시장과 짬짜미한 교사들이 만든 ‘검은 카르텔’이 예상보다 깊숙이 교육 현장에 침투해 있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교육 시장과 첫 거래를 튼 교사들은 주변 교사들에게 ‘사업 아이템’ 소개하듯 서로를 꿰었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팀을 결성해 역할 분담을 하는 등 사실상 ‘기업형 범죄’나 다름없는 행태를 보였다. 공정의 가치는 교실에서부터 무너져내렸고, 시험은 더 많은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러한 뒷거래는 학원가가 밀집한 서울에서 집중적으로 횡행했다. 일부 교사들의 일탈로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크게 훼손됐다.
교사와 사교육업체 간 뒷거래 방식은 상식을 초월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대구 수성구의 한 수학 교사는 2019년 2월 수능 모의고사 문제 1회분(33개 문항)을 세전 1000만원에 제공하는 ‘납품 계약’을 구두로 맺었다.

서울 송파구의 윤리 교사는 2018년 4월 수능 모의고사 10회분(1회분 20개 문항)을 사교육업체에 회당 250만원에 제작·판매했다.
서울 강북구의 지구과학 교사는 2020년 10월 “한 달간 연락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해 사교육업체 담당자로 하여금 수능 출제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러고선 자신이 제공하는 20개 문항당 거래단가를 300만원에서 350만원으로 인상해달라고 요구해 관철시켰다.
서울 송파구의 영어교사는 2019년 12월 EBS 수능 연계교재 파일을 빼돌려 변형한 뒤 학원 강사를 상대로 장사하던 중 보안이 강화돼 교재 파일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문항당 거래단가를 10만원에서 14만원으로 인상했다. 6∼7년에 걸친 장기간 뒷거래를 이어가며 2억∼7억원을 챙긴 서울 강북구의 지리교사, 경기 용인의 수학 교사 등도 있었다. 나아가 서울 양천구의 일부 국어교사들은 다른 사교육업체와 거래를 트지 않는 조건으로 특정 업체와 전속계약을 맺고 1700만∼3300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수학 교사는 6년에 걸쳐 매달 300만원씩 총 1억9000만원을 챙겼다.
학교가 아닌 사교육업체 소속 직원처럼 활동한 교사들도 적발됐다. 서울 서대문구의 국어교사는 2010년 사교육업체 사무실에서 다른 교사들과 모여 모의고사 문항을 제작했다. 경기 수원의 수학 교사는 사교육업체 요구로 다른 교사들을 섭외해 팀을 꾸리고 자신이 팀장 역할을 했다. 서울 서초구의 수학 교사는 2017년 4월부터 1∼2주에 한 번씩 다른 학교에서 ‘팀원’들과 모여 교재를 집필해 사교육 시장에 납품했다. 서울 동작구와 양천구 등 소재 고교 국어교사 12명은 번갈아 팀을 이뤄 뒷거래를 이어왔다. 적발된 교사들 중에는 문제 장사로 번 돈을 배우자 계좌로 입금받아 추적을 피하고 탈세를 하는가 하면, 배우자 명의로 문항거래업체를 차려 공급책으로 활용한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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