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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유명무실 치료감호’ 20년 만에 손질 [심층기획-망상, 가족을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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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11 07:00:00 수정 : 2025-03-11 09: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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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 ‘명령 실무화’ 착수
검찰 ‘청구’ 법원 ‘요구’ 확대 도모

정신질환 범죄자 치료 기회 늘려 재범 방지… 檢 협조가 관건

법원행정처, 치료감호 20년 만에 손질

검찰, 10년간 청구율 0.5∼1% 불과
검사가 치료감호 필요한지 여부 판단
청구 안 할 시엔 법원에서 강제 못 해
“檢·법원, 제도 이용 소극적” 지적 일어

치료감호 활성화 팔 걷은 법원행정
법관들 대상 요구 장려 홍보·교육
향후 실무연수 교육과정에도 포함
檢과는 간담회 갖고 협조 요청키로

실제 활성화되기까지 과제 산적
“검사 거부 땐 결국 재판만 지체될 뿐
치료감호 청구 명확한 기준 만들고
檢이 법원 요구 따르는 관행 세워야”

법원행정처가 ‘치료감호 명령 실무화’에 착수한 것으로 10일 파악됐다. 치료감호법이 제정된 2005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사법부가 공식적인 제도 활성화에 나선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치료감호 명령 실무화 방안으로 법원이 ‘치료감호 청구 요구’ 권한을 적극 행사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치료감호란 심신장애 상태 등에서 범죄행위를 한 경우 교도소가 아닌 국립법무병원에서 치료받게 하는 제도로, 검사가 ‘청구’하면 법원이 필요성을 판단해 ‘명령’하게 돼 있다. 다만 검사가 청구하지 않을 경우에도 법원은 검사에 청구를 ‘요구’할 수 있는데, 이 요구 권한 행사를 늘리겠다는 게 법원행정처 방침이다.

 

정신질환의 영향으로 범죄를 저지른 환자의 재범을 방지하고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치료감호 명령이라는 제도가 도입됐지만, 이용률이 부진하다는 지적에 따라 법원행정처가 개선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감호 명령 선고율이 지나치게 낮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검찰은 치료감호 청구에 소극적이고, 법원 또한 검찰에 적극적으로 치료감호 청구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일 법무부가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이 치료감호를 청구한 대상은 46명에 불과했다.

 

2019년 184명에서 2020년 65명으로 떨어진 뒤 매년 100명 이하를 기록하다가, 지난해에는 50명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 10년간 정신장애가 있는 범죄자가 연간 5000∼9000명(경찰통계연보)인 점을 고려하면 치료감호 청구율은 0.5∼1%에 불과한 셈이다.

 

“형기 중 성실하게 약물치료를 받아 만기 후 가족과 함께 사회생활에 큰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간절히 요청드립니다. 치료감호가 절실합니다.”

 

강용석(60대·가명)씨와 정명주(60대·가명)씨는 지난해 10월 2심 재판부와 담당 검사에게 탄원서를 냈다. 아들 강태진(30대·가명)씨가 교도소가 아닌 국립법무병원에서 치료받으며 복역하는 치료감호를 선고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중증 정신질환이 있는 태진씨는 약을 끊은 상태에서 모친이 ‘사탄’으로 보이는 망상에 시달렸다. 끝내 그는 모친을 흉기로 찌른 혐의(존속살해미수)로 재판정에 섰다.

 

탄원서는 담당 검사와 재판부에 전달됐지만, 태진씨의 ‘치료’를 위한 간절한 요청까지 그들에 가 닿지는 못했다. 태진씨에겐 1심보다 1년 감형된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됐을 뿐 치료감호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용석씨는 상고를 고심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변호사들이 3심에서도 치료감호 관련 판단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태진씨는 교도소에 수감됐고, 여전히 “엄마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말하는 등 망상 증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 태진씨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며 모친을 흉기로 가격한 혐의(존속살해미수)로 재판에 넘겨진 이현우(28·가명)씨는 지난해 11월 2심에서 보호·치료(치료감호)가 선고됐다. 모친의 탄원서를 받은 검사가 마음을 돌려 치료감호를 청구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둘 모두 약 복용 관리 등의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국립법무병원에서 형을 사는 현우씨와 달리 교도소에 수감된 태진씨는 치료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더 크다. 검찰 재량에 따라 치료감호 청구 여부가 달라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검사의 ‘청구’와 법원의 ‘요구’ 확대

 

법원행정처가 치료감호 명령 실무화에 착수한 이유는 태진씨처럼 치료감호가 필요함에도 누락되는 사례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 방법으로 우선 법원이 검사에게 치료감호를 청구하도록 적극 요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법관의 치료감호 청구 요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법관들을 상대로 최근 대법원이 치료감호 미청구를 문제 삼아 파기환송한 판례(대법원 2024도9537)의 의의를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음주운전 등으로 기소된 피고인의 ‘알코올 사용에 의한 상세불명의 정신 및 행동 장애’에 대해 치료감호 필요성을 인정해 하급심으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재범의 위험성과 치료의 필요성을 짚으며 “(이러한) 사정에 대해 충실하게 심리하지 않은 채 소송절차를 진행해 변론을 종결하고 원심판결을 선고했다”고 지적하며 “법관이 치료감호 요구 권한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치료감호 제도의 중요성을 인정하며 검찰과 법관이 치료감호 명령 제도를 적극 검토·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판결이었다.

 

법원행정처는 이 사건 판결문을 법관 내부망과 개별 메일로 안내했고, 추후 법관 대산 형사재판실무연수 과정 등에서도 교육 과정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나아가 법원행정처는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 확대를 위해 향후 검찰과의 간담회에서 협조를 촉구하고, 법원이 심리 결과 치료감호 필요성을 인정해 청구를 요구한 경우에는 검찰이 적극 응해 줄 것을 요청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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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검찰 협조…“청구 기준 세워야”

 

치료감호 명령 실무화 방안을 두고 법조계는 “치료감호 중요성을 인정했다는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주영 부산지법 동부지원장은 “대법원 판결을 본 판사들은 치료감호를 선고하지 않으면 향후 판결이 파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치료감호 명령에 더 신경 쓰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실제 치료감호 명령이 활성화하는 성과로 이어지기까진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 기준 수립 등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사가 법관의 치료감호 청구 요구에 응하게 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게 이들 의견이다.

 

A 판사는 “치료감호 청구 요구를 해도 검사가 법원 요구에 따라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을 경우 재판 시간만 지체된다”며 “검사가 치료감호를 청구하는 실무 기준을 만들고, 법원이 청구를 요구하면 검찰이 따르는 관행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관은 치료감호 청구를 요구만 할 수 있고, 결국 검찰이 청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른다. 2021년 1월, 헌법재판소가 검사만 치료감호를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치료감호법)’이 헌법을 위배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놨기 때문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제청한 ‘치료감호 청구 제한사건’ 헌법소원 심판에서 치료감호법이 7대 2로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치료감호 청구주체와 판단주체를 분리함으로써 치료감호 개시절차가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기 때문에 검사만 치료감호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하여 적법절차 원칙에 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합헌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법원이 청구 요구를 해도 검사가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치료감호할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법무부가 치료감호 명령 현황부터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법무부가 치료감호 명령과 관련해 집계하고 있는 통계는 검찰의 청구 현황뿐이다. 법원의 치료감호 청구 요구를 검사가 이행한 비율이나 치료감호 명령이 인용된 비율에 대한 통계는 집계하지 않는다. 관련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고 효과적인 개선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비판이다.

 

명주씨와 용석씨 부부는 2심 선고 후 5개월간 매주 교도소를 찾아 태진씨를 면회하고 있다. 태진씨가 또렷한 정신으로 “교도소에서 나가면 회계사가 돼서 호강시켜 주겠다”고 말할 때면 마음 한구석에 희망이 솟구쳤다가도, 몇 주 뒤 “엄마가 나를 죽이려 한다”며 망상을 드러낼 땐 희망이 절망으로 변했다. 부부가 할 수 있는 건 아들이 교도소에서 약을 꾸준히 먹길 기도하는 것뿐이다.


조희연·윤준호·김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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