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봄날의 일이다. 평일 한낮이었고 나와 친구는 대공원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제법 큰 호수와 식물원, 탁 트인 산책로와 등산로를 갖춘 대공원은 벚꽃철이면 발 디딜 곳 없이 사람이 몰렸다. 그러니 사람이 없을 때 공원에 가자고, 여유롭게 산책하다가 자전거를 타자고 친구가 말했다. 자전거 대여소를 찾아 걸으며 친구는 계속 기지개를 켰다. 겨우내 몸을 옹송그리고 있느라 키가 오 센티미터는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그런가 싶어서 나도 기지개를 켜고 괜히 옆구리 운동을 하며 길을 걸었다.
2인용 자전거를 대여한 뒤에야 우리는 문제점을 깨달았다. 친구도 나도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우리는 맹꽁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릴 때 자전거도 안 배우고 뭘 했어?” “난 롤러 스케이트파였어. 그러는 너는?” “난 그냥 뛰어다녔어.” 우리는 애꿎은 핸들만 이리저리 돌리다 자전거를 반납하러 갔다. 나이가 지긋하신 대여소 직원분이 우리 하는 꼴을 보고 있다 밖으로 나왔다. 마침 사람도 없으니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타보면 별것도 아니라고, 앞을 똑바로 보고 한 발 한 발 내딛기만 하면 된다면서 말이다. 친구와 나는 엉겁결에 각자의 자전거 위에 앉았다. 직원이 옳지 옳지, 어이쿠, 요란하게 추임새를 넣을 때마다 우리는 약간의 수치스러운 마음과 오기와 용기를 담아 페달을 밟았다. 삼십 분쯤 후에는 대여소 앞 광장을 빠져나와 호숫가를 달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정말이지 이상한 경험이었다.

친구와 나는 내리 달렸다. 호수를 돌아 작은 숲길로 빠져든 뒤에는 아직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은 넓고 납작한 화단 사잇길을 달렸다. 나는 오른발을 내디딜 때마다 하나, 하나, 하고 읊조렸다. 몸을 부드럽게 움직이는 일도, 앞바퀴를 함부로 휘젓지 않으려 핸들을 단단히 붙잡는 일도 내겐 쉽지 않았다. 코너를 돌 때마다 몸이 기울어져 나는 여러 번 멈춰야 했다. 방향을 바꾸려면 일단 자전거에서 내린 뒤 그것을 손으로 밀고 끌었다. 그럼에도 나는 서툰 꼴로 마음껏, 망설임 없이 나아갔다.
자전거를 반납할 즈음엔 친구도 나도 지쳐 있었다. 음료수를 사와 의자에 앉으려다 우리는 불에 덴 듯 벌떡 일어섰다. 좁은 안장에 짓눌려 있던 엉덩이에서 뻐근한 통증이 올라온 탓이었다. 우리는 어정쩡하게 서서 음료를 마시다 급기야 어정어정 걷기 시작했다. 봄날이었고 바람은 차갑거나 따뜻했으며 유아차를 끌고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한가로워 그림자조차 느슨한 한낮이었다. 사소한 것을 배우고 시답지 않은 성취에 뿌듯해하며 서툰 모습을 지나치게 질책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시간 속에 우리는 있었다. 언제쯤 꽃이 필까, 그때는 꽃비가 내리는 산책로를 달려보자, 새로운 약속을 하며 헤어지던 3월의 봄날.
그런 사소한 날들을 기억한다. 오늘을 뒤덮은 소란이 괴로워 안전하고 평온했던 어느 봄날을 떠올린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아무 의심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봄날을 이제 그만 돌려받고 싶다고 읊조려보는 것이다. 가만히 그러나 간절히.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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