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효모로 계란 만드는 시대
인류에 이로운 철학만 갖춘다면
식량·기후 위기 답 찾을 수도
2025년 3월17일 과학계에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세균이 만든 ‘나일론’이 등장한 것이다. 석유를 이용하지 않고, 유전공학을 통해 설계된 박테리아가 새로운 형태의 플라스틱을 만들어냈다. 기존 나일론보다 더 강하고 유연하며, 무엇보다 생물기반 소재라는 점에서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에 발표된 이 연구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서 ‘합성생물학’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최전선을 보여준다.
세균이 공장이 되고 DNA가 코드가 되는 시대다. 우리는 이제 생명체를 자연의 산물이 아닌, 인간이 설계하고 조작한 결과물로 바라보는 전환점에 서 있다. 합성생물학은 유전자 일부를 고치는 차원을 뛰어넘어 아예 생명체 자체를 설계하고 새롭게 조립하는 과학이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듯 생명의 언어를 디자인한다.

갑작스러운 발상이 아니다. 이미 2010년 미국의 생물학자 크레이그 벤터는 세상에 없던 생명체를 실험실에서 만들어냈다. 그는 미생물의 DNA를 완전히 인공적으로 합성하고 이를 껍질만 남긴 박테리아 세포에 주입해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했다. 이 생명체는 JCVI-syn1.0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고 “인류 최초의 합성 생명체 신시아”로 불린다. 비록 단순한 세포지만 그것은 분명히 사람이 만든 유전자로 작동하는 생명이다.
이 역사적 순간에 어떤 이들은 흥분했고 또 어떤 이들은 불안했다. 생명이라는 본질을 손에 쥐게 된 인간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단순히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 철학과 윤리, 사회 전반에 걸친 논의로 확장됐다. 메리 셸리가 200년 전 발표한 ‘프랑켄슈타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이 생명을 창조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이미 실현 가능성이 되었고 이제는 ‘그 생명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두 번째 질문이 남았다.
오늘날 합성생물학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현실적인 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환경 분야에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 인공 광합성 미생물이 개발되고 있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해하는 세균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해양 유출 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기름 분해 박테리아는 사고 피해를 줄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식량 문제는 합성생물학이 가장 시급하게 개입해야 할 영역이다. 현재 지구 인구는 80억을 넘어섰고, 기후변화와 전쟁, 농지 감소 등으로 식량 생산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식량 분야에서의 혁신은 기후변화와 식량 불균형 그리고 영양 부족이라는 세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열쇠다. 실제로 세계 여러 스타트업은 이미 합성 효모를 이용해 계란 단백질을 만들고 있으며, 우유의 주요 성분을 소 없이 재현하는 기술도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단지 동물 윤리나 비건 식단을 위한 기술이 아니다.
의료 분야의 발전도 눈부시다. 특정 암세포만을 인식해 약물을 전달하는 스마트 박테리아, 장내 미생물을 조작해 면역력을 높이는 치료법, 희귀 유전질환에 맞춤 설계된 유전자 치료제 등은 질병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인간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더욱 중요해진 건강한 노화, 즉 웰에이징(Well-aging) 분야에서도 합성생물학은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합성생물학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균이 나일론을 만들고, 미생물이 식탁에 오르는 시대.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단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그 기술이 만들어갈 세상의 방향이다. 합성생물학은 생명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우리가 이 새로운 지휘자에게 어떤 악보를 건네줄지에 따라 미래의 멜로디는 달라질 것이다. 잘만 활용하면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 식량 부족, 건강한 수명 연장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거나, 생물학적 무기로 악용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과 철학이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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