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7세 고시’… 외신도 화들짝
혼인·출산 저하 악순환 이어져
공교육 내실화로 바로 잡아야
ENA가 최근 방영 중인 월화드라마 ‘라이딩 인생’이 인기다. 딸의 ‘7세 고시’를 앞둔 열혈 워킹맘 이정은(전혜진 분)이 엄마 지아(조민수 분)에게 학원 라이딩을 맡기며 벌어지는 3대 모녀의 대치동 라이프를 솔직담백하게 그려냈다. 학원 라이딩을 대신해줄 시터(도우미) 찾기가 어려워지자 불안과 스트레스에 동분서주하는 정은의 모습이 애처롭다.
토미로 불리는 남자아이는 늘 학원 성적 1등임에도 엄마의 눈치와 압박에 손톱을 물어뜯는 불안증세를 보인다. 이쯤 되면 교육인지 학대인지 구분조차 힘들 지경이다. 육아를 뛰어넘어 마치 ‘전쟁’을 치르는 엄마들의 치맛바람을 통해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개그우먼 이수지의 패러디도 화제다. 제이미 맘으로 등장한 이수지는 ‘대치동 맘’ ‘도치 맘’을 패러디하며 라이딩 모습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 패러디는 단순한 웃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치 맘의 교복이라 불리는 ‘몽클레어’ 패딩이 풍자의 대상이 되자 중고거래 플랫폼에 매물로 쏟아졌다. 공교롭게 자녀 라이딩 영상을 공개한 유명 여배우는 지탄의 대상이 됐다.
초등 의대반 열풍과 맞물려 ‘4세 고시’ ‘7세 고시’란 말이 등장한 지 오래다. 4세 고시는 유명 영어·수학 학원의 레벨 테스트를 위해 부모가 4살 아이와 수험생처럼 준비하는 세태를 빗댄 말이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하는 7세 아동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더 좋은 영어 학원에 들어가려면 ‘7세 고시’를 치러야 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6세 미만 영유아 절반을 학원으로 내모는 한국의 치열한 학업 경쟁’이라는 기사에서 한국 영유아의 사교육 실태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FT는 한국 사교육을 대표하는 ‘학원(hagwon)’에 대해 “영어, 수학, 과학, 글쓰기 등과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곳”이라며 “한국에서 매우 큰 산업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FT는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일류 대학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갈 수 있도록 학원에 의지한다”고 평했다. ‘hagwon’이라는 단어가 세계 최대 사전인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도 등재된 웃픈(웃기면서 슬픈) 현실이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얼마 전 내놓은 ‘2024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는 충격적이다. 지난해 초중교 사교육비 지출은 29조2000억원으로 4년 연속 최대치를 경신했다. 학생 수가 전년 대비 8만명이나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통계 사각지대에 있던 영유아 사교육 시장의 실태도 처음 공개됐다.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의 1인당 사교육비는 월 30만원을 훨씬 웃돌고, 영유아 거의 절반은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어유치원’의 월평균 비용은 무려 154만5000원에 달했다. ‘학원 공화국’ 오명은 물론 사교육 망국론이 나오는 것도 과장이 아니다.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이 맥을 못 추고 있다. 2023년 사교육 전담팀을 만들고 9년 만에 종합대책을 내놓는 등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무용지물이다. 킬러 문항을 없애고, 사교육 카르텔 타파를 천명했지만 허사였다. 지난해 의대 증원 과정에서 오락가락 행보로 학부모와 수험생의 불안만 커졌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책임을 통감한다”고까지 했다.
경쟁사회에서 사교육 전체를 죄악시할 순 없다. 다만 도를 넘는 사교육 경쟁으로 경제력·지역에 따라 억울하게 뒤처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금쪽같은 자식이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다른 걸 줄여서라도 학원비는 아끼지 않는 이유다. 과도한 사교육비는 혼인율과 출산율을 떨어트려 국가 존립을 위협한다. 편안한 노후는 고사하고 사회 양극화까지 심화시킨다.
흔히 사교육을 ‘그림자 교육(shadow education)’이라고 한다. 사교육 폐해를 줄이는 정책이 그림자처럼 또 다른 사교육의 풍선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의미에서 붙었다. 그만큼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방증이다. 역으로 보면 학교 교육이 내실화되면 사교육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당국의 분발과 각성이 필요하다. ‘교육부 무용론’ ‘교육부 해체론’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말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