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배구 도로공사의 임명옥(39)은 현역은 물론 V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최고의 리베로다. 2019~2020시즌부터 2024~2025시즌까지 베스트7 리베로 부문을 6시즌 연속 수상하고 있다. 베스트7이 신설되기 이전엔 수비상도 2차례(2010~2011, 2013~14)도 받았다. 지난 14일 열린 시상식에서는 20주년 베스트7에서도 리베로 부문 수상자는 임명옥이었다.

1986년생으로 2005 V리그 원년에 신인이었던 임명옥. 드래프트 동기인 황연주(현대건설)와 더불어 어느덧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되어 여자부 최고령 선수가 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임며옥의 기량은 명불허전이다. 2024~2025시즌 초반만 해도 목적타의 타겟이 되는 등 다소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스포츠계의 격언대로 임명옥은 자신의 클래스를 회복했다. 시즌을 마친 뒤 나온 성적표가 이를 증명한다. 전매특허인 리시브 효율은 무려 50.57%. 단연 1위다. 리그 유일의 50% 이상의 리시브 효율이다. 2위인 김연경(41.22%)과 무려 9% 이상 차이날 정도로 압도적인 1위다. 디그 역시 임명옥이 1위다. 세트당 5.113개로 이 역시 리그에서 유일하게 세트다 5개를 넘긴 선수가 임명옥이었다. 리시브와 디그를 합친 수비도 당연히 임명옥이 세트당 7.326개로 1위다.
2024~2025시즌을 마치고 임명옥은 6번째 FA 자격을 획득했다. 임명옥이 도로공사에서 차지하는 전술적 비중에 여전히 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자랑하는 임명옥의 기량을 감안하면, 아무리 이제 40대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발 빠른 계약은 물론, 연봉도 최소 동결, 인상은 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임명옥의 계약 소식은 FA 협상 기간 중에 들려오지 않았다. 24일 협상 기간 만료후 KOVO의 공시를 통해 총액 1억5000만원(연봉 1억원+옵션 5000만원)에 도로공사와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뿐이다. 임명옥이 이 정도의 헐값에 계약을 맺은 이유는 뭘까?
임명옥은 협상 시한 만료 하루 전만 해도 미계약 신분으로 남는 게 아니냐는 배구계 관측이 나올 정도로 협상이 지지부진했다. 그 시작은 도로공사가 팀 연봉 규모를 샐러리캡(27억원)보다 3~4억원을 줄이라는 내부방침 때문이었다.
이번 FA 시장에서 도로공사의 FA는 임명옥이 유일했다. 임명옥은 2024~2025시즌에 총액 3억7000만원(연봉 3억5000만원+옵션 2000만원)을 받았다. 2024~2025시즌 선수단 연봉 총액이 25억9000만원이었던 도로공사로선 임명옥에게 연봉 동결 조건조차 제안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쯤이면, 도로공사가 샐러리캡 최대치에서 3~4억원을 줄이라는 내부방침을 내린 이유가 궁금할 법 하다. 요약해 말하면 도로공사는 2024~2025시즌을 앞두고 FA 최대어인 강소휘를 보수상한선인 8억원(연봉 5억원+옵션 3억원)을 꽉꽉 채워 영입했다. 그러나 배구단은 일찌감치 강소휘 영입을 추진한 반면 도로공사 본사에는 이에 대한 보고가 늦었고, 강소휘 영입으로 인한 보상금 8억원을 GS칼텍스에 지급하는 것에 본사 내부에서 잡음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배구단과 본사의 소통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으면서 본사는 2024~2025시즌엔 샐러리캡보다 3~4억원을 더 연봉규모를 줄이라는 방침을 세우게 된 것이다.

임명옥이 먼저 연봉을 줄여서라도 잔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도로공사는 쉽사리 계약을 제안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도로공사는 사인 앤드 트레이드를 수소문해봤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자타공인 최고의 리베로인 임명옥에 대해선 모든 구단이 탐을 냈지만, 다른 팀들도 FA 영입에 한창인 상황에서 최소 3~4억원을 지급해야 하는 데다 어느덧 마흔이 되어 향후 트레이드 카드로도 활용하기 어려운 임명옥을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데려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지지부진한 협상에 임명옥은 도로공사에서는 뛰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게 됐고, 도로공사는 협상 시한 만료에야 사인 앤드 트레이드 조각을 맞추게 됐다. 이대로 미계약 신분으로 남을 수 없었던 임명옥은 향후 트레이드될 팀의 사정이 고려된 1억5000만원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임명옥을 보내고 도로공사가 받아오는 반대급부도 선수나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이 아닌 현금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공사로선 헐값에 최고의 리베로를 보내게 된 셈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