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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 교수,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하다

입력 : 2013-10-25 20:47:57 수정 : 2013-10-25 20: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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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 지음/오철우 옮김/동아시아/2만7000원
온도계의 철학(Inventing Temperature)- 측정 그리고 과학의 진보/장하석 지음/오철우 옮김/동아시아/2만7000원

물은 섭씨 100도에 끓고, 0도에서 언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전문 용어로 비등점과 빙점이라는 끓고 얼어붙는 순간을 어떻게 정했을까. 누가 왜 100도에 끓는다고 정했고 0도에서 언다고 정의했을까. 초등생 저학년 수준의 물음에 불과하다지만, 통상 이런 기초적인 상식의 내막도 모른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에 초빙된 장하석 교수는 신간 ‘온도계의 철학’을 내고, 과학 철학의 근본 문제에 접근한다. 딱 10년에 걸친 연구 실적이 이 책이다. 인류가 이룬 과학적 성과에 인문학적 개념을 도입한 일종의 과학교양서인데, 일상의 물리적 현상 너머에는 수많은 과학적 지식들과 그에 얽힌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들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장 교수는 이 책으로 설명한다. 장 교수의 글은 다소 장황하고 어려운 과학 용어도 적잖게 섞여 있지만 독자들을 ‘생각의 바다’로 유도하기엔 부족하지 않다.

비등점과 빙점을 고정하는 일련의 과정은 거의 200년이나 걸렸다. 온도계 하나만으로도 과학 영웅들을 다수 탄생시켰다. 예컨대 화씨온도계로 유명한 ‘파렌하이트’, 섭씨온도계를 만든 ‘셀시우스’, 잠열을 측정한 ‘블랙’, 열용량 이론을 발전시킨 ‘어빈’, 끓는 점을 고정시킨 드 뤽과 캐번디시, 도예의 대가 웨지우드, 근대적 열역학 이론을 세운 윌리엄 톰슨 등이 그들이다.

장 교수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과학하기가 무엇인지, 과학철학이 무엇인지 풀이한다. 난시나 약시인 사람은 안경을 써야 한다. 안경에 뭔가 묻어 있으면 작거나 희미한 물체엔 눈의 초점을 잘 맞출 수 없다. 그런데 안경을 살펴보려고 안경을 벗으면 안경에 있는 미세하게 긁힌 자국과 얼룩을 볼 수가 없다. 눈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안경을 쓰고 거울 앞에서 서면, 렌즈의 세세한 모습을 아주 잘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내 안경은 내게 안경 자신의 결점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이 자기 교정의 과정이다. 과학계에서 유명한 자기 교정 학습이 이것이다. 장 교수는 이런 사례들을 다수 들면서 ‘과학하기’를 유도한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이 책은 2004년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를 통해 출간됐다. 출간 직후 과학철학계의 노벨상으로 인정받는 ‘러커토시상’을 받고 장 교수를 과학철학계 거장으로 우뚝 서게 하였다. 헝가리의 저명한 과학철학자였던 임레 러커토시를 기려 만든 이 상은 과학철학 분야에서 최근 6년간 출판된 영문서적 가운데 최고의 책을 골라 수여한다. 장 교수는 2005년 영국 과학사학회가 이 분야의 가장 뛰어난 저술가에게 주는 ‘이반 슬레이드상’도 받았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으로 국내 독자에게 잘 알려진, 같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친형이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장하석 교수를 ‘21세기의 토머스 쿤’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토머스 쿤은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도출한 인물. 장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스스로 터득한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펼친다. 장 교수의 이 책은 최근 융합 학문으로 흐르는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장 교수는 이미 10여년 전에 융합이라는 학문적 흐름을 간파하고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과 조화에 천착한 학자로도 이름이 높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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